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작성자 : pts | 작성날짜 : 2024-05-21 | 수정자 : pts | 수정날짜 : 2024-05-21

본문: 마태복음 16:13-19 제목: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24. 2. 11 향기나무성서침례교회 주일예배 서 병 안 목사 중심 사상: 말세를 사는 성도는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1. 지금은 명절 연휴 기간이다. 오랜만에 가족이나 친척들을 만나게 되면 상대를 부르는 호칭 때문에 곤란할 때가 있다. 가까운 사이는 어렵지 않은데 조금 먼 친척은 부르기가 애매할 때가 있다. 2. 그저께 멀리 싱가포르에 사는 조카딸이 와서 저녁 식사를 했다. 조카가 나를 외삼촌이라고 부르는데 그의 딸은 나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마땅한 호칭이 없어서 그냥 외삼촌 할아버지라고 했지만 뭔가 개운한 느낌은 아니었다. 3. 사람과의 사이에서 호칭은 매우 중요하다. 정확한 호칭은 상대방에게 예의를 표시하고 존중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호칭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잘못된 호칭을 사용하면 매우 기분 나빠할 수도 있다. 4. 요즘에 가끔 어디에 가서 어르신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속으로 매우 당황할 때가 있다. 상대방은 나를 존중하는 의미로 어르신이라고 하지만 듣는 내가 생각할 때 “내가 그렇게 나이가 들어 보이나?”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냥 무난한 호칭은 ‘선생님’ 정도면 좋을 것 같다. 5.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하신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3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가로되 더러는 침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6. 그때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묻는다. 15절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에 제자들은 아마도 잠깐 속으로 당황해서 멈칫했을 것이다. 7. 예상치 못한 예수님의 질문에 당황해서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못할 때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한다. 16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8. 당시 베드로가 고백한 이 믿음의 대답은 성경에 나오는 모든 신앙 고백 중에 가장 위대한 고백이다. 아니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부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호칭이다. 9. 오늘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던진 이 질문,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이 질문을 우리에게 적용해 보면서 설교를 시작한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떻게 부르고 계십니까? 10. 나는 여러분의 입에서 베드로와 똑같은 고백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16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고백이 말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왜 필요한 고백인가를 알아보면서 복을 나눈다. Ⅰ.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구원받은 성도들이다. A. 상대를 부르는 호칭은 그 호칭을 사용하는 사람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1.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나를 ‘여보’라고 부른다면, 나를 여보라고 부르는 그 사람은 틀림없이 내 아내가 맞다. 세상에서 나를 여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안은옥이란 사람 외에는 없다. 마찬가지로 내가 여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도 단 한 사람 안은옥 여사뿐이다. 2. 그러니까 누군가 상대방에 대한 호칭을 부를 때 그 호칭을 사용하는 사람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성경의 이야기는 예수님이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렀을 때 제자들에게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말하느냐?” 3. 그동안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각종 기적을 베푸셨다. 병든 자를 고치셨고 죽은 자도 살리셨다. 귀신도 쫓아내셨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 그러니까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고 남은 음식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차게 하셨다. 4. 그리고 그런 기적뿐 아니라 당시 대제사장이나 선지자들과는 다른 가르침과 영적인 권위와 가르침을 사람들 앞에서 행하셨는데 당시 예수님을 만나 그런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구원자)로 보지 못했다. 5. 단지 엄청난 기적을 행하는 예수님을 보면서 침례 요한이다. 더러는 구약성경 말라기서에 기록된 엘리야 선지자다. 또 어떤 이는 예레미야 선지자나 선지자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의 단편적인 면만 보았기 때문이다. 6. 그러자 예수님은 이번에는 제자들에게 질문하신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의 정곡을 찌르는 이 질문에 정말 다행히도 베드로가 정확하게 예수님이 듣고 싶어 하신 답을 말한다. 16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B. 주는 그리스도라는 말에는 매우 심오한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1. 원래 그리스도라는 말은 히브리어 ‘메쉬하’라는 말의 헬라어 표현인데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하나님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뜻이다. 2. 구약에서는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에게 기름을 부음으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권위가 부여되었음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예수님에게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붙여서 부른다는 것은 예수님이 장차 온 세상의 왕으로 오신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3. 베드로의 이 고백이 위대한 이유는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침례요한으로 보았고 엘리야로 보았고 그냥 선지자로 보았는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나의 왕입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이다. 예수님은 이어지는 마16:27-28에서 장차 내가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왕권을 가지고 올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4. 그리스도의 또 다른 의미인 제사장인데 구약에서 제사장은 성소나 성전에서 제사 의식을 통해 백성들의 죄를 하나님께 아뢰고 용서를 구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이유는 예수님이 자기의 죄를 하나님께 아뢰고 모든 죄를 탕감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구원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5. 삼 년이 넘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다니시면서 내가 세상 죄인들을 구하러 온 하나님의 아들이다. 직접 기적을 베푸시면서 자기가 하나님의 보내신 아들이라고 가르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 예수님이 얼마나 마음속으로 답답하셨을까? 6. 그런데 베드로가 정말 이런 예수님의 답답한 마음을 알기나 한 것처럼 예수님의 마음이 한방에 시원하게 뻥 뚫어지게 하는 믿음의 고백을 한 것이다. 주는 나의 그리스도입니다. 나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하나님 앞에 가셔서 내 죄를 탕감받게 만드신 대제사장입니다. 히브리서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히브리서 9:11-12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C. 그러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라고 말한 그 고백 안에는 예수님이 온 세상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대제사장이라는 엄청난 믿음의 가치가 담긴 위대한 고백이다. 1. 사랑하는 성도님들에게 묻는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부르고 계십니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이 질문에 무어라고 대답할 수 있겠나? 2. 나는 여러분의 입술에서 오늘 베드로와 똑같은 고백이 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 면 우리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예수님을 향해 나의 주님 또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를 수 없다. 3. 베드로의 위대한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17절을 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4. 바울은 고린도전서 12:3절에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고 부를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향해 아무 거리낌 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나의 주인으로, 만왕의 왕으로 인정한다는 위대한 신앙 고백이다. 5. 로마서에서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로마서 10:9-10, 13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6. 우리가 예수님을 향해 주님은 나의 그리스도라고 부를 수 있다면 우리는 정말 영생의 복 받은 사람들이다. 이 고백은 예수님께서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나 대신 죽으셨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그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을 믿는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고백이다. 7. 예수님은 베드로의 믿음의 고백을 들으신 후 베드로를 크게 축복하신다. 18-19절을 본다.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Ⅱ. 우리가 구주로 믿는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A. 베드로는 믿음으로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 1. 당시만 해도 가나안 지방은 물론 온 세상에 우상 천지였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반드시 우상이 함께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의 손으로 만든 우상은 생명이 없는 죽은 신들이다. 2. 그러나 메시아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은 자기들이 조상 때부터 믿어 온 하나님이요 지금도 동일하게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이다. 베드로는 자기들이 주로 섬기는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3. 예수님은 그동안 틈틈이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다” (마12:9) “나와 하나님은 하나이니라” (요10:30) 라고 자신이 하나님임을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그런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었고 믿음으로 고백한 것이다. 4.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은 베드로의 놀라운 믿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영원성을 믿는 신앙이 담겨있다. 생각해 보라 그 고백은 자기들이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가능한 고백이다. 5. 자기 조상 때부터 믿던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400년의 노예 생활을 끝내도록 도와주셨고 광야 40년 동안 먹을 것 입을 것을 공급해주신 하나님, 가나안 땅에 있던 일곱 이방 족속을 물리치도록 도우신 하나님,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에서 포로로 있던 자기 민족을 약속대로 70년 만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회복시키신 하나님이시다. 6. 그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믿는다는 믿음의 고백이다. 지금은 비록 우리가 로마제국에 의해 점령당한 상태이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지금도 살아계시니 우리 민족의 왕권이 다시 회복될 것이다. B. 베드로의 고백에는 예수님의 신성을 고백하는 믿음이 들어있다. 1. 말라기 선지자 이후 지난 400여 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은 엄청난 고난을 겪었다. 헬라 제국과 로마제국의 침략으로 그들은 어둠 가운데 있었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들고 지도자로 나섰지만 결국 인간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여전히 로마의 속국으로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2. 그러나 지금 자기들을 인도하시는 예수님은 그들과는 다른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의 표현이다. 그동안 예수님이 보여주신 기적과 가르침은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메시아가 분명하며 자기 민족을 구원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확신한 것이다. 3.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믿지 않기 때문에 침례요한이다. 엘리야다. 예레미야다. 등등으로 말하고 있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었다. C. 우리 성도님들에게 묻는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까? 1. 아멘! 주님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하셨으니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다. 그분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분의 가르침이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진리의 말씀임을 우리는 분명하게 믿고 확신한다. 2.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친히 하나님되신 예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선 한 계획 가운데 인도하실 것이다. 성경에 약속한 영원한 천국은 물론 지금 살고 있는 현세에서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늘 우리와 동행하신다. 안전과 공급과 선한 뜻 가운데 인도하시는 우리의 주님이시다. 3. 성경은 여러 곳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그리고 예수님을 근본 하나님으로 표현한다. 신약 빌립보서 2:6-7에서도 예수님을 근본 하나님의 본체라고 말한다. “그(예수)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본체요 하나님과 동등한 위격을 가지신 분이라는 말이다. 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독생하신 하나님이시며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분명하게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란다. 5. 우리가 베드로와 같은 믿음으로 여러분의 입술에서 오늘 베드로와 똑같이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고백을 들으시고 칭찬하실 것이다.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 우리는 정말 복 받은 사람들이다. 6. 베드로와 함께 제자로 섬기는 도마는 나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야 비로소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요20:28)라고 고백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베드로의 고백은 위대한 믿음의 고백이다. Ⅲ.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님이 자기 인생의 주인됨을 인정해야 한다. A.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거듭난 성도들이다. 1. 우리는 본래 죄인이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 대신 죽으신 대속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 앞에 거룩한 성도로 설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것을 은혜라고 말하는 것이다. 2. 내가 죄 없다고 인정받은 것은 나의 노력이나 어떤 열심히 노력한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나 대신 죄값을 치러 주셨고 내가 영원히 완벽하게 죄를 탕감받았으니 우리는 그것을 십자가 은혜라고 말하는 것이다. 3. 성경은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이제 우리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닌 예수님이라고 말한다.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4.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나도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믿는다. 그때 나도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은, 예전의 나는 죽었고 내 안에 살아계신 분은 내가 아닌 예수님이라는 고백과 같다. 5.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시니 바울의 표현대로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다. 그러니까 내 인생이지만 내뜻 대로 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이 주인됨을 인정하는 삶이다. B. 우리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할 이유는 예수님이 나를 위해 친히 목숨까지 주셨기 때문이다. 1. 우리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과 함께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갈라디아서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 여기서 말하는 정과 욕심은 인간의 죄악 된 본성을 말한다. 거짓과 음란과 탐욕, 그리고 시기와 교만과 분쟁 등이다. 나의 이런 죄악 된 본성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모두 함께 죽었다는 뜻이다. 3. 가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항상 자기 체면이나 자존심만 앞세우는 세우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구원은 받았는지 몰라도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실 때 자기 정과 욕심을 못 박지 않은 사람이다. 4.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나의 계획도, 나의 욕심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사도 바울의 날마다 자기가 죽노라고 말한 것은 자기의 정욕과 죄와 탐욕 등을 날마다 죽이며 산다는 말이다. 그것이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신 은혜에 합당한 삶의 모습이다. 5. 오늘은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나는 누구이며 내가 믿고 의지하는 예수님은 내게 어떤 분일까를 생각하다가 오늘 말씀을 준비했다. C. 오늘 설교를 들은 우리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묻는 예수님의 이 심각한 질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분명하게 아래와 같이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1. 우리가 구주로 믿는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2. 우리가 구주로 믿는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3.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님이 자기 인생의 주인됨을 인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