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비전을 따라가라.
작성자 : pts | 작성날짜 : 2026-02-05 | 수정자 : pts | 수정날짜 : 2026-02-05

본문: 사도행전 9:10-22 제목: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가라. 24. 8. 25 향기나무성서침례교회 주일예배 서 병 안 목사 중심 사상: 성도가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 살아갈 때 행복해진다. 1. 모든 사람의 인생은 어딘가에서 끝이 난다. 그리고 소수의 사람만이 자기가 목표로 삼은 것을 이루게 되며 목적지로 삼은 곳에 도달함으로 삶을 끝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비전을 갖고 산 사람들이다. 2. 만약 여러분에게 10년 후 여러분의 모습이 어떻게 될지 글로 적거나 그림으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분명하게 자기 모습을 그릴 수 있겠나? 뭐 그렇게 인생을 복잡하고 어렵게 살 필요가 있느냐? 그냥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을지도 모른다. 3.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그냥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산 사람들과 뚜렷한 인생의 비전을 갖고 산 사람들의 결과는 현저하게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고 본다. 4. 비전은 삶에 동기를 제공한다. 평소 무의미하게 지나던 시간이나 일들도 거기에 가치가 부여됨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평소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이나 허드렛일, 그리고 반복적인 일들이 비전이라는 과정을 통해 가치 있는 일들로 바뀌게 된다. 5. 예를 들어 여러분이 자루에 흙을 채우는 일을 한다고 생각해 보라. 만약 특별한 목적이 없는 상태에서 그 일을 계속하게 되면 사람들은 금방 지루해지고 실증을 내게 된다. 그런데 그 일에 홍수로 위기에 처한 도시를 구하기 위해 둑을 쌓기 위한 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마 여러분들이 밤새며 일할 가치가 충분해진다. 6. 마찬가지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은 마치 자루에 흙을 반복적으로 퍼담는 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비전을 갖게 되면 평소 똑같은 일상일지라도 가슴 벅찬 일로 가치가 변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비전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7. 일반적으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비전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이 비전이란 단어의 의미는 사용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어떤 이는 자기의 장래 희망이나 계획을 비전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미래를 비전이라고 한다. 8. 이 비전이란 단어를 성경적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갖고 성도에게 보여주신 미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성도의 비전이란 자기 꿈이나 야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는 것이다. 9. 그러면 우리가 비전을 갖고 살아갈 때 어떤 유익이 있는지, 그리고 왜 우리가 비전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복을 나눈다. 오늘은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가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비전을 갖고 살아야 할 이유에 대하여 말씀드린다. Ⅰ. 하나님은 세상을 향한 선한 목적을 가지고 성도 각 사람을 부르셨다. A. 하나님의 비전에 동참하여 살아가는 인생은 행복하다.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이루는 일에 동참하는 성도가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1. 여러분 한 사람의 인생을 가장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실 때 또는 부르실 때 가지셨던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갈 때 내 인생의 가치가 가장 높아진다고 믿는다. 2. 성경에 보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신약의 요셉과 마리아 부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 바울 등등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그런 사실을 증명한다. 3. 노아는 장차 있을 세상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홍수심판 때, 방주를 만들어서 사람과 동물의 생명을 보존함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다. 노아는 그 일을 위해 그는 무려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드는 일을 했다. 그리고 그가 만든 방주를 통해, 노아 가족 8명과 각종 짐승과 새들을 일 년 넘게 계속된 홍수심판에서 살아남게 된다. 4. 만약에 노아가 죄가 관영했던 세상을 심판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시려는 하나님의 비전에 동참하지 않고 그냥 당시 사람들과 동행하면서 일생을 마쳤다면 노아라는 인생의 가치는 지금과는 분명히 다른 결과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5. 그러나 노아가 당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보여주신 비전에 동참하기 위해 무려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며 살았던 그 시간과 일상은 노아의 일생을 하늘의 빛나는 별과 같은 가치로 바꾸어 주었다. 5.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도 마찬가지다. 만약 아브라함이 자기를 세상 사람들을 위한 복의 근원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비전에 동참하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은 당시 먹고 마시고 나름 즐겁게 인생을 즐기다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그냥 그렇게 살다가 흙으로 돌아간 수많은 사람 중 하나로 끝났을 것이다. 6. 그러나 그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비전에 동참했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세상을 위한 복의 근원이 되었고 성경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조상이라는 영광스런 이름을 부여했다. B. 노아, 아브라함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구원하신 이유도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1.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비유한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요 우리는 하나님이 빚으신 그릇들이다.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 때 사용할 용도나 목적이 없이 만드는 경우는 전혀 없다. 2. 나는 지금 여러분이 보내는 시간들도 그 환경도 모두 목적이 있고 용도가 있다고 믿는다.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으셨고 부르셨기 때문이다. 조금 전 제가 토기장이는 용도나 목적이 없이 어떤 그릇도 만들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3. 하나님은 말세가 가까이 오고 있는 이 상황에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해 애를 쓰신다. 그 일에 여러분과 저를 사용하신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도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가는 일도 하나님에게는 모두 그리고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노아를 불러 120년 동안 방주를 짓게 하신 일만큼 중요하다고. 본다. 4. 장차 이 세상 끝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여러분과 제가 수고하며 세운 이 교회가 노아시대 홍수에서 노아의 가족을 지켜준 방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 향기나무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일에 동참하는 일이다. 5. 그 비전을 위해서 여러분을 부르신 것이고 그리고 나를 부르신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게 되면 바뀌어야 하고 스스로 바꿔야 한다. 바울이 다메섹에 간 이유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잡아서 옥에 가두기 위해 갔다. 6. 그러나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이후 인생의 목표가 바뀌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잡으러 갔다가 예수님을 만난 후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영이 죽었다가 살아났으니 새로운 피조물이요 원래의 인생 목표가 달라졌으니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7. 여러분은 예수님을 만난 사실이 분명한가? 예수님을 만난 후 여러분의 인생 목표가 바뀌었나? 여러분의 꿈, 여러분의 비전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비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 다메섹은 예수님을 만난 장소요. 하나님의 비전을 새롭게 받은 장소다. (사도행전 9:19?22) 19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20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 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8. 바울은 인생의 목표가 참된 바리새인의 삶을 사는 것이요, 바리새인의 신앙을 방해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잡아서 그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었다. 그랬던 그가 예수님을 만난 후 이제는 반대로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고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복음 사역자로 바뀐 것이다. 9. 이런 모습이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가는 삶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가라고 하니까 걱정부터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 나도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어야 하나? 아니다. 10. 하나님은 여러분 각 사람에게 각기 다른 그릇으로 창조하시고 부르셨다. 여러분에게는 여러분에 어울리고 여러분만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그 일이 무엇이든지 바울과 같은 태도로 그 일을 감당하라. 바울이 어떻게 했는지 살펴본다. (빌립보서 3:13?14)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11.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티 내지 않으려고 적당하게 하지 말고 푯대를 향해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부르신 상을 위하여 전심전력해야 한다. 그렇게 살려면 내게 주신 하나님의 비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바울처럼 예수님을 만난 그때부터 자기를 부르신 목적대로 움직이라. 12. 바울은 예수님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그릇이니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한 것이고. 우리는 예수님을 만난 이곳, 내가 지금 성도로 속해있는 주님의 몸인 이 향기나무 성서침례교회를 열심히 섬기고 세우고 전도해야 한다. 13. 복음을 전하든지, 반주로 섬기든지, 음식을 만들든지, 방송을 담당하든지, 설겆이를 하든지, 청소를 하든지 적당하게 하지 말고 바울처럼 최선을 다하라. 그것이 여러분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비전에 동참하는 성도의 참된 모습이다. 14. 우리는 나를 위해 계획하신 하나님의 다양한 비전을 발견하고 그 일에 동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작은 눈송이조차 똑같이 만들지 않으시는 분이다. 일정한 틀에 우리를 찍어낸 것이 아니란 말이다. 15.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비전은 여러분 각자에게 유일한 것이며 그 유일성이 여러분에게 삶의 목적과 가치를 부여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여러분이 매일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될 것이며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할 이유가 될 것이다. 16. 나이가 많고 적은 것에 매이지 말라. 가진 것의 많고 적음에 위축되지 말라. 여분네의 아들 갈렙도 85세의 나이에 이스라엘을 위한 가나안 땅의 비전에 동참했다. 여호수아 14:10-12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Ⅱ.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가는 인생은 오류가 없으며 실패하지 않는다. A.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가는 인생을 보면 삶의 방향성이 분명한 것을 보게 된다. 1. 하나님의 비전이 주는 가장 실제적인 이점은 하나님의 비전이 우리의 삶에 방향을 설정해 준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비전을 갖고 사는 성도들은 삶의 우선순위와 가치관이 분명하다. 2. 아까 제가 하나님의 비전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갖고 성도에게 보여주신 미래 일’이라고 말씀드렸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라면 목적지가 분명하고 중간에 예상치 못한 오류가 생기지 않도록 친히 하나님이 조정해 주신다. 3. 자기 꿈이나 야망을 좇아가는 사람들이 인생에서 오류를 겪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삶의 방향성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 때문이 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시대적으로 또는 환경적으로 세상의 다양한 가치관의 도전을 받게 된다. 4.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처음 가졌던 인생의 목표를 바꾸거나 멈추는 이유가 생각지 못한 여러 가지 장애물을 만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이유로 인해 중간에 삶의 목적이나 방향성이 바뀌게 된다. 5. 그러나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가는 성도는 삶의 방향성이 분명해서 중간에 바뀔 일도 없고 그 비전으로 인해 오히려. 더 견고해지게 된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따라갈 때 우선순위가 분명한 가치관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6. 비전은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이루어가는 길에 있는 장애물들을 쉽게 제거해 준다. 특히 좋은 것들 사이에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할 때 아주 훌륭하게 그 역할을 할 것이다. 7. 비전이 분명한 사람은 그 길을 감에 있어 자연스럽게 생기는 방해물에 대한 가치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능력이 있다. 버릴 것과 취할 것의 가릴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좋은 것은 가장 좋은 것의 적이 될 수 있다. 아무리 괜찮게 보이는 것이라 해도 그것이 비전을 이루어 가는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8. 나 같은 경우는 내가 하나님의 비전을 따르겠다고 결심할 당시 내가 가진 전 재산을 당시 하던 사업에 투자한 상태였다. 내겐 내 인생 전부가 걸린 생명줄 같았던 사업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그 사업을 미련없이 내려놓고 비전을 선택할 수 있었다. 9. 만약 당시 내가 그 사업을 비전보다 더 중요하거나 가치 있게 여겼다면 나는 비전을 따라가는 중간에 멈추고 말았을 것이다. 당시. 내가 따르던 하나님의 비전이 내 사업보다 더 가치있게 여겨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것이 비전의 힘이다. 10. 비전이 있는 사람은 매일 아침 자기가 왜 일어나야 하는지 안다.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올해 이번 달 이번 주 그리고 오늘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할 지 명확하게 알고 행동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11. 어떤 이는 비전 없이 열심히 노력만 사는 사람을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서 열심히 노젓기 하는 것과 비슷한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정말 열심히는 살지만 분명한 방향성이 없으니 인생이 허무하게 생각되고 쉽게 지치고 자포자기하게 된다. B. 하나님의 비전 안에 사는 사람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실패처럼 보이는 것도 비전을 이루는 도구가 된다. 1. 비전을 따라 사는 성도라고 해서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대로는 실패도 하고. 잘못 판단하는 때도 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그런 실패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생긴 결과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2. 모세 같은 경우가 그런 케이스다.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를 통해 이집트 왕궁으로 들어가서 왕자의 교육을 받는다. 당시 아기 모세가 애굽 바로의 공주의 손을 빌려서 애굽 왕궁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호랑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일이다. 자기를 죽이려는 바로 왕이 거하는 곳이 아닌가? 바로의 눈을 피해 숨어있어도 모자랄 판에 그가 있는 왕궁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3.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그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세를 장차 자기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 40년 동안 안전하게 인도할 지도자의 준비를 하게 하신다. 성경을 기록하기 위한 학문적인 소양이 필요하니 그를 당시 최고의 학문을 자랑하는 애굽으로 보낸 것이다. 그것도 당대 최고의 선생님을 붙여서 교육받게 하신 것이다. 4. 모세오경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 이 방대한 내용을 기록하려면 깊은 학문적인 소양이 필요하다. 모세는 바로의 궁에서 40년간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 지도자가 되기 위한 각종 공부를 한다. 그리고 40년이 지나자 또 다른 공부를 하기 위해 하나님은 그를 광야로 내모신다. 5. 왕궁에서 잘 먹고 잘사는 모세에게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광야로 나가서 40년간 훈련받으라고 하면 모세가 네 알겠습 니다. 하고 왕궁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가 궁을 떠날 수밖에 없도록 환경을 만들어 가신다. 그가 자기 민족 형제가 이집트 사람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을 보게 하시고. 분노한 그가 애굽 사람을 때려죽인다. 6. 살인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살인 현장을 다른 이집트 사람이 보게 하셔서 모세는 어쩔 수 없이 왕궁을 떠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이끌어 가신다. 그러면 왜 잠시만 피하면 되지 40년 동안 광야에서 목동으로 살게 하셨을까? 7. 참 하나님은 기가 막힌 분이시다. 생각해 보라 만약에 모세가 광야로 도망가서 40년 동안 목동 생활을 한 것이 헛된 시간이라면 그는 살인자이고 겁쟁이고 그동안 받은 왕자의 교육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 보면 모세의 광야 40년은 실패한 시간이 아니다. 8. 그곳에서 그는 목동으로. 지내면서 광야 구석구석 다니며 그곳 지형을 익혔다. 그때 익힌 지형과. 환경은 나중에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나와 가나안까지 가는 동안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9. 초행길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그러나. 모세는 그 척박한 광야에서 무려 40년 동안 지냈기에 능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전하게 가나안으로 인도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과정을 통해 모세를 훈련시키기 위해 모세는 살인자가 되었고 살기 위해 광야로 도망을 가도록 환경을 이끌어가신 것이다. 누가? 하나님이 그런 환경을 통해 모세를 훈련시키려고 하신 것이다. 10. 어쩌면 지금 여러분이 처한 환경이 여러분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불편하기도 하고 때로 실패하기도 하고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과정들을 통해 여러분을 훈련시키기도 하시고 환경을 만들어 가기도 하신다. 그러니까 구원받은 성도에게 있어 의미 없는 시간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B. 비전은 하나님이 나를 특별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시기 위해 부르시고 할 일을 보여주시는 것을 말한다. 1. 물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비전을 위해 목회자나 선교사 등 전 생애를 드린 사람들도 있지만 비전의 모양이나 역할이 각 사람마다 각기 다른 임무와 역할을 맡기신다. 2. 다윗은 어린 소년 때 하나님의 비전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고 왕으로 내정된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삶은 오히려 험난했다. 당시 왕이었던 사울이 그를 정적이요 경쟁자로 여겨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3. 하지만 다윗은 그 많은 위험과 힘든 과정을 지나면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구했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에 자기를 드렸다. 어디서 그런 초인적인 힘과 능력이 나왔을까? 하나님이 주신 비전에서 나오는 힘이다. 4. 아마도 다윗이 자기 꿈이나 계획으로 왕이 되려고 했다면 중도에 몇 번은 포기했을 것이다. 왕이 되기도 전에 두려움과 잘못된 선택으로 왕의 자리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포기했을 것이다. 자기 비전을 붙들고 사는 성도는 중간에 작은 어려움을 만나면 쉽게 포기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붙들고 사는 사람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5. 바울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를 이방인과 왕에게 복음을 전하는 비전을 위해 부르셨다는 확신이 있었다. 자기가 세운 비전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다. 바울은 그 비전 때문에 죽기 직전까지 매를 맞았어도 견딜 수 있었고 옥에 갇혔어도, 자기를 죽이려는 사십 명의 특공대가 있어도 그는 비전을 놓지도, 버리지도 않았다. 6. 만약 자기가 세운 비전이었다면 진작에 방향을 수정했을 것이다. 안전하고 쉬운 길로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제대로된 인생을 살려면 내 비전이나 야망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붙들어야 한다. 4. 아브라함 같은 경우는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인 세상을 위한 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 75세라는 늦은 나이에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야 했다. 그가 단순히 고향을 떠난 것이 전부가 아니다. 5. 그는 무려 75년 동안 자기가 살아온 익숙한 환경에서 떠나야 했다. 몸과 마음에 익숙한 삶의 터전에서 떠나야 했다 . 처음 보는 낯선 장소와 처음 보는 사람들 속에서 인생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6. 나는 오늘 함께 하신 우리 성도님들에게 진실된 마음으로 권면한다.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 살기 바란다. 그럴 때 여러분의 인생이 큰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요. 결코 후회함도 아쉬움도 없는 최고의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7.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가는 인생은 오류가 없으며 실패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바울의 비전을 향한 결단의 고백을 함께 읽으면서 설교를 마친다. 빌립보서 3:13?14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C. 결론 1. 우리가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가야 할 이유가 있다 2. 하나님은 세상을 향한 선한 목적을 가지고 성도 각 사람을 부르셨다. 3.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가는 인생은 오류가 없으며 실패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