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갈라디아서5:16-26, 로마서7:17-25 제목: 성숙한 성도의 성품(1) 절제 24. 9. 29 향기나무성서침례교회 주일예배 서 병 안 목사 중심 사상: 육체의 정욕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나타나는 절제에서 나온다. 1. 오늘은 성숙한 성도의 성품 시리즈 첫 번째 시간으로 절제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절제라는 말은 자신의 어떤 감정이나 욕망에 대하여 스스로 자신을 억제하고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말하지 않고 견디기 힘들 때 말을 참는 것이 절제요, 술이나 정욕으로 인한 몸의 유혹을 참고 견디는 것이 절제다. 2.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 감정이나 욕망에 대하여 스스로 다스리지 못한다. 사람이 절제하지 못하면 심각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 성적 욕망을 절제하지 못해서 평생 쌓아 올린 명예를 한순간에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 유력한 정치인이나 유명한 목사, 신부도 적지 않다. 3. 절제는 유명한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예쁜 신발만 보면 사지 않고는 못 배긴다. 어떤 사람은 신상 모자만 보면 사야 하고, 어떤 사람은 신상 가방만 보면 사지 않고는 못 배긴다. 결과는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파산에 이르게 된다. 4. 성도의 절제는 믿음의 삶에서도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22-24절을 본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오래 참음과.. 절제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성숙한 믿음을 가진 성도는 육신의 정욕이나 탐욕 앞에서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5.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를 생각해보라. 성능이 좋은 자동차일수록 빨리 달린다. 그러나 성능이 좋아서 빨리 달린다기보다는 브레이크가 있어서 빨리 달릴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빨리 달릴 수 있는 성능이 좋은 차라해도 브레이크를 밟았을때 정지하지 않는다면 그 차는 탈 수 없는 위험한 흉기에 불과할 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뛰어난 능력을 갖는 것도 필요하지만 필요할 때 멈출 수 있는 자제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6. 우리 아들 인규가 어렸을 때 있었던 이야기다. 의왕시에 살 때인데 그때 초등학교 운동장이 조금 높은 곳에 있었고 운동장에서 길로 나오려면 비탈길을 내려와야 했다. 인규가 자전거를 타고 그 비탈길을 내려오는데 자전거가 너무 속도를 내자 브레이크 잡는 것을 잃어버렸는지 듣지 않았는지 아이가 너무 겁이 나서 넘어지고 말았다. 그때 얼굴 반쪽 전체가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6. 우리는 이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우리의 육신과 정욕과 탐욕까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다. 오늘은 성숙한 성도에게 나타나는 아름다운 성품 ‘절제’에 대하여 깊게 생각해 보면서 함께 복을 나누도록 한다. Ⅰ. 육신의 정욕은 성도의 성숙한 삶을 방해한다. A. 구원받은 성도라고 해도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죄가 남아있다. 1. 바울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말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선택하라고 권면한다. 2. 바울의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성도의 마음 속에는 성령의 뜻과 육체의 욕심, 이 두 가지가 공존함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은 상태지만 여전히 마음 속에는 육신의 정욕도 존재한다는 말이다. 3. 성도의 삶은 육신의 정욕을 따라갈 수도 있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갈 수 도 있는 것이다.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사는 성도를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성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4.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은 성도는 죄를 지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에 구원받는 과정이 너무나 분명하게 기록된 사도바울도 자기 마음 속에 여전히 죄가 존재하며 그로 인해 심각한 내적 갈등이 있다고 고백한다. 5. 로마서 7:18-24절을 함께 본다.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6. 여러분과 내가 아무리 구원받은 성도라 해도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우리는 항상 마음 속에서는 죄의 유혹과 성령의 인도하심 사이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한다. 내 몸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죄의 속성 때문이다. 안돼~! 괜찮아~! B. 성도가 육신의 정욕을 따라가면 성숙한 성도로서 성장할 수 없다. 1. 바울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다시 갈라디아서 본문으로 돌아간다. 5:17절을 본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2. 육체의 정욕대로 따라 사는 성도의 삶에서는 결코 성도의 성숙함을 볼 수가 없다. 19-21절을 본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3. 아무리 구원받은 성도라해도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면 더럽고 추한 것들이 삶 가운데서 드러나게 된다. 음란하고 더럽고 방탕하고 우상 숭배하며 사람들과 다투고 시기하고 분노하며 이기심으로 갈라져서 사람들과 원수처럼 지낸다. 질투하고 술 취해서 흥청거리며 방탕하게 행동하는 모습들이 드러나게 된다. 4. 이렇게 죄로 인해 파생된 육신적이고 더럽고 추한 것들을 품고 즐기는 성도들은 결코 성숙해지거나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가 없다.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데 그런 사람에게 무슨 영적 성숙함을 바라겠는가? Ⅱ. 성도는 육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다. A. 성도가 거룩하고 성숙한 삶을 살려면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한다. 1. 자신이 어떻게 구원받은 사람인지를 알면 함부로 살지 못한다. 오늘 본문 24절을 본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 사람은 자기 자신의 가치를 모르면 함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이 24절 말씀을 잘 이해하려면 갈라디아서 2:20절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갈2:20절은 사도바울이 자기 정체성을 명확하게 선언한 믿음의 고백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3. 바울은 말한다. 나는 산 사람이 아닙니다. 이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그때 나도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지금 내가 살아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살아계신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사는 이유는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4.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우리도 바울처럼 예수 안에서 죽고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본문 2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말은 내 욕심이나 나의 장래계획이나 나의 자아, 나의 자존심까지 모두 버렸다는 말과 같다. 5. 내가 예수 안에서 죽은 사실이 분명하다면 사람들 앞에서 자기 체면을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자존심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죽은 사람에게 체면이나 자존심이 어디 있나?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고도 시기하거나 질투심이 생기면 안된다. 다른 사람이 내 자존심을 긁어도 불평하거나 분노하지 말아야 한다. 6. 우리는 육체의 정과 욕심을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은 성도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알면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예수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다. 아직도 자존심이 남아있다면, 아직도 질투하고 분노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덜 죽은 사람이다. B. 성숙한 성도의 삶은 언제나 거룩함을 선택하는 결단으로부터 시작된다. 1. 조금 전에 구원받은 성도 안에 항상 죄의 유혹과 성령의 인도하심이 공존한다고 말씀드렸다. 성도가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죄가 나타나기도 하고 성령의 열매가 맺히기도 한다. 2. 바울은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권면한다. (로마서6:12-14)“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3. 믿음의 삶은 선택의 싸움이다. 성도는 자기 몸을 의의 병기로 드릴 수도 있고 죄로 왕 노릇하게 할 수도 있다. 어떤 성도는 짧은 믿음의 연조이지만 성숙한 성도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러나 어떤 성도는 충분히 성숙한 성도의 삶을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여전히 미성숙한 상태에 머무는 것을 보게 된다. 4. 왜 그럴까? 그것은 그 사람이 자기 몸을 의의 병기가 아닌 죄의 병기로 드렸기 때문이다. 성숙한 성도의 삶은 믿음의 선택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우리 향기나무교회 성도님들이 모두가 성숙한 성도의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축복한다. Ⅲ. 절제와 인내로 육신의 정욕을 제어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A. 자기 마음대로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을 때 성령께 전적으로 의지해야한다. 1. 절제라는 말이 자신의 어떤 감정이나 욕망에 대하여 스스로 자신을 억제하고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씀드렸다. 특별히 성도의 삶에서 절제하고 인내해야 할 영역이 몇 가지 있다. 2. 육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인데 우선 생존을 위해 몸에서 요구하는 인간의 3대 욕구가 있다. 식욕, 성욕, 수면욕이다. 그리고 영적인 부분으로 교만함이다. 이 부분들은 모두 성도로서의 절제와 인내가 필요하다. 3. 교회 안에서 구원은 받은 성도지만 육신적 그리스도인이 있다. 주로 몸에서 요구하는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그런 분들은 교회 안에서 행동할 때 성도로서의 덕스러움보다는 자기 몸의 욕구가 우선이다. 지나치게 감정으로 사람들을 대하지 말아야 한다. 4. 성욕도 절제하지 못하면 심각한 문제를 가져온다. 성욕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이지만 정해진 선을 넘어가면 패가망신한다. 교회 안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면 교회도 큰 위기에 처하게 된다. 특히 남자들이 절제해야 한다. 그중에서 지도자 급인 목사나 전도사 교사 등은 더 조심하고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5. 사도 바울도 자기 몸의 정욕을 물리치기 위하여 자기몸을 쳐서 복종케 했다고 고백한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실 면류관을 위해 바울은 자기 몸을 자기가 쳐서 복종시킨다고 한다고 고백한다. 6. 유명한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미루는 습관 때문에 미완성으로 남은 스케치가 전 작품의 3분의 2를 차지한 다고 한다. 빅토르 위고는 미루는 습관을 극복하기 위해 글을 쓸 때 알몸으로 썼다고 한다. 알몸으로 글을 쓰면 글을 쓰는 동안에 외출하는 욕구를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7. 사실 몸의 욕구를 다스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기가 스스로 통제하기 어렵다고 생각되거든 기도하라. 하나님께 기도하고 도움을 요청하라. ”하나님 나는 이 부분이 너무 힘듭니다. 도와주세요. 성령께서 제 몸을 지켜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하라. 성령께서 도와주신다. B. 정말 교회 안에서 조심하고 절제해야할 부분이 있다. 바로 교만함이다. 1. 교만은 절제하지 못하면 그보다 악한 일이 없다. 사람은 남보다 더 높아지고 싶은 본능이 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정말 조심하고 조심해야 한다. 교만해지려는 마음을 절제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2. 교만이란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을 넘어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가정에서는 남편이요, 회사에서는 상사다. 교회 안에서는 예수님이 주인이시고 성경의 권위가 가장 높지만 목사는 그 권위를 위임받은 사람이다. 3. 아내가 남편을 쥐고 흔들려고 하는 것이 교만이고 직장에서 상사를 무시하는 것도 교만이다. 과장이 부장에게 보고해야 하는데 자기가 직접 사장에게 보고하면 그것은 부장을 무시하는 행위가 된다. 물론 핑계거리는 다 있다. 너무 급해서, 상사가 너무 답답해서 그랬다지만 그것은 핑계다. 4. 교회 안에서도 정해진 질서가 있다. 그 질서대로 움직여야 한다. 교회 안에서는 담임목사 그리고 부교역자 그리고 담당 대표자의 권위가 우선된다. 자매님 쪽도 마찬가지다. 사모와 부교역자 사모가 귄위의 순서다. 그리고 그 다음은 연장자가 우선이다. 귄위를 이양받은 성도는 그 권위를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덕이 우선이다. 그럴려면 상대방을 존중하고 나보다 나은 사람으로 여겨야한다. 5. 교회 안에서 목사나 사모보다 더 똑똑하고 많이 배운 성도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일단 교회 안에 들어오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인정해야한다. 그래야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 그것이 하나님의 질서를 존중하는 것이다. (로마서8:7-8)“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6. 혹시 특별한 사정으로 담임목사가 자리를 빌 때는 부목사나 전도사가 그 권위를 대신한다. 가끔 선교사라고 하는 분들이 교회 안에서 귄위를 행사하려고 하는데 선교지에서는 그분이 최고의 권위자이지만 개 교회에서는 목사나 전도사 그리고 교회 직분자들이 우선이다. 만약에 목사가 성도의 동의를 얻어서 귄위를 위임했다면 그것은 가능하다. 베드로후서1:5-7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C. 결론 1. 육신의 정욕은 성도의 성숙한 삶을 방해한다. 2. 성도는 육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다. 3. 절제와 인내로 육신의 정욕을 제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