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성도의 성품(2) 분별력과 정직
작성자 : pts | 작성날짜 : 2026-02-05 | 수정자 : pts | 수정날짜 : 2026-02-05

본문: 빌립보서 1:1-11, 로마서 12:1-2, 삼상15:17-23 제목: 성숙한 성도의 성품(2) 분별력과 정직 24. 11. 10 향기나무성서침례교회 주일예배 서 병 안 목사 중심 사상: 성숙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에게서는 예수님을 닮은 성품들이 나타난다. 1. 성숙한 신앙과 인격을 가진 성도님들에게 나타나는 좋은 성품들이 여러 가지가 있다. 사랑이 많다든지. 잘 베풀거나 남을 잘 섬긴다든지. 항상 겸손하다든지. 어려움을 당해도 믿음으로 인내한다든지. 등등 2. 오늘은 성숙한 성도의 성품 중에서 분별력과 정직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저는 어른과 아이의 큰 차이 중 하나가 분별력이라고 생각한다. 분별력이란 서로 다른 일이나 사물을 종류에 따라 가려내는 능력이다. 예를 들면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해야 한다. 갓난아기는 분별력이 없어서 손에 잡히는 것은 모두 입으로 가져간다. 3. 따라서 어른이라면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해야 할 말과 절대로 해서는 안될 말을 구분하지 못하면 어른이 아닌 애다. 어른이라면 때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있어야 할 때와 떠날 때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4.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다워졌을 때 ‘철 들었다’라고 말한다. 반대로 사리를 분별할 줄 모르는 아이를 보고 철(이) 덜 들었다고 말한다. ‘철부지 어린애’ 역시 적당한 때를 모르(不知)는 아이라는 말이다. 5. 하나님은 로마서 12:2 말씀을 통해서 성도들에게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명령하신다. 6. 믿음의 삶에서 영적인 분별력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믿음을 지켜나가려면 참과 거짓을 분별해야 하고 말과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매 순간 성도로서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가야 할 곳과 가서는 안될 곳들을 끊임없이 분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7. 따라서 성숙한 믿음을 가진 성도와 초보 신앙을 가진 성도의 차이도 영적인 분별력의 차이에서 온다고 말할 수 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너희가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고 진실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한다고 격려한다. 8. 나도 오늘 우리가 구원받은 성도로서 성숙한 믿음으로 본이 되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준비했다. 성도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분별력과 정직에 대하여 함께 나눈다. Ⅰ. 영적 분별력은 세상에서나 교회에서 선한 능력을 발휘한다. A. 성숙한 성도는 범사에 선한 분별력으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다. 1. 우리가 믿음으로 거듭나면 말과 행동에서부터 변화가 온다. 매 주일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성도 간에 교제를 하면서 믿음 생활에 대한 기준이 생긴다. 설교를 듣고 성경을 배우다 보면 구원받은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된다. 2. 목사는 설교를 통해 성도가 해야 할 일들을 가르치고 성도들에게 해서는 안될 일에 대해서도 가르친다. 또한 성도 간에 교제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성도로서 가져야 할 가치관에 대하여 배우게 된다. 성도로서 삶의 목적과 가치를 배운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도덕과 윤리의 기준을 자연스럽게 갖추게 된다. 3.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바른 지식과 지혜로 말미암아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믿음을 통해 장차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늘 기도했다. 여기서 말하는 지극히 선한 것이 무엇인가? 구원에 이르는 진리의 말씀이다. 4. 성경의 바른 진리를 가까이하게 되면 영적인 지혜가 생긴다. 성도로서 내가 취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고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고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알게 된다. 그러나 성경을 멀리하게 되면 진리에서 멀어지고 믿음이 퇴보한다. 5. 성숙한 믿음이나 바른 믿음은 영적 분별력에서 나온다.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영적으로 분별력 없는 성도들이 있다. 성경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복 받는 방법, 성공하는 방법, 기도 응답받는 방법은 자주 들어서 알고 있지만 성경이 말하는 진리에 대해서는 까막눈이다. 6. 예를 들어서 자기가 구원받은 것에 대한 확신 구절이나 구원받은 증거에 관한 말씀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 다음은 구원의 확신에 관한 구절이다. 요한일서 5:11-12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7. 반대로 이런 류의 성경 말씀보다는 무언가 자기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만한 성경 구절들만 열심히 암송한다. 시편 81:10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마태복음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자신의 필요를 채우고 기도 응답에 관한 유리한 말씀은 줄줄 외우지만, 영적인 성숙함을 갖추는데 필요한 말씀은 소홀히 여긴다. 그러다 보니 이단들의 거짓 선동에 쉽게 넘어간다. 영적인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다. 9. 마태복음 7:15-16절에 보면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여기서 삼가라는 말은 주의하라. 경계하여 조심하라는 뜻이다. 10.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진리의 말씀을 분별할 줄 아는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그들의 말이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와 같은 것인지, 거짓 진리인지 분별할 줄 아는 지식과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B. 자기 믿음을 지켜주는 영적 지식과 올바른 분별력은 성경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1. 데살로니가전서 5:21-22에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좋은 것을 헤아려 취할 수 있는 능력이 분별력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좋은 것과 악한 것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2. 내가 보기에는 아무리 좋고 선하게 보여도 성경에서 악한 것이라고 하면 그것은 악한 것이다. 그것은 취해야 할 것이 아니라 버려야 할 것들이다. 성도는 세상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를 가치관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3.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거나 영적인 것을 분별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느 신학자가 이렇게 말했다가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유명한 기독교 작가(어거스틴, 유진 피터슨, C. S. 루이스)의 말이 우리의 영적 상태를 분별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 유명한 목사나 대형 교회 목사님의 설교가 기준이 되어서도 안된다. 4. 우리의 기준은 어떤 일에 대하여 성경은 과연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가 유일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심지어 여러분이 섬기는 교회 담임목사가 성경과 다르게 말한다면 그 목사님의 말도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5. 오직 하 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가치관과 영적인 분별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한국은행에서 가짜 지폐를 구분하는 훈련을 할 때 직원들에게 진본 지폐를 보여주고 진본 지폐만의 특징을 습득하게 한다. 6. 요즘은 매년 새로운 기술력이 더해져서 위폐를 매우 정교하게 만들다 보니 위폐를 구분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가짜 지폐를 구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본 지폐가 가진 특징을 완벽하게 습득하는 것이라고 한다. 7. 마찬가지로 요즘 세상에는 별의별 이상한 이단들이 많이 생겼다. 이단들의 교리가 워낙 정교하게 발전해서 오히려 교회 성도들이 거짓 진리에 설득당해서 이단에 빠진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운 이단이 나타날 때마다 일일이 새로운 이단에 대하여 공부하는 것보다는 진리인 성경을 정확하게 가르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8. 우리가 성경에 대하여, 구원의 진리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고 나면 이단의 가르침이나 주장이 참 진리가 아닌 거짓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성경을 어설프게 알고 있기 때문에 이단의 거짓 진리에 맥없이 당하는 것이다. C. 영적 분별력이 있는 성도는 믿음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중요하게 여길 줄 알고, 사소한 것은 사소하게 여기는 지혜가 있다. 1. 그러나 분별력이 없는 성도를 보면 사소한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 안에서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있다.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당연히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한다. 근데 사소하고 무가치한 일에 죽자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어리석은 사람이다. 2. 왜 그렇게 어리석게 행동하는 줄 아는가?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다. 영적인 분별력이 있는 사람은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목숨걸고 지킨다. 그러나 사소한 것은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 지혜가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니까 사소한 것에 목숨걸고 달려드니 교회 안에서 성도 간에 갈등하고 다툼이 생기는 것이다. 3. 세상 살아가면서도 남보다 나은 분별력만 있으면 훨씬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같은 돈을 가지고서도 남보다 더 나은 곳에 투자할 수 있다. 더 좋은 물건을 살 수도 있다. 세상 일에도 그런데 영적으로 분별력이 있으면 얼마나 더 풍성함을 누릴 수 있겠나? 4. 민수기 14장에는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열두 정탐꾼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께서 오래 전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있다. 5. 그런데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정탐꾼 중 열 명은 가나안 땅을 악평했고 나머지 두 명,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라고 보고한다. 왜? 같은 시간에 같은 지역을 탐지하고 돌아온 열두 명의 정탐꾼이 두 패로 나뉘어서 다른 평가를 하게 되었을까? 6. 영적인 분별력의 차이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하나님의 언약과 믿음으로 가나안 땅을 판단했고 나머지 열 명의 정탐꾼은 믿음의 눈이 아닌 육신의 눈으로 보고 판단했다. 7. 열 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먼저 본다. 민수기 13:31-33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8. 그러나 반대로 여호수아와 갈렙은 모세에게 말하길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길 수 있다고 보고한다. 이번에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를 본다. 민수기 14:6-9 6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 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9. 똑같이 가나안 땅을 탐지한 이후 열 명은 가나안 땅이 사람을 삼키는 땅이라고 악평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심히 아름답고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라고 평가했다. 10. 가나안 땅에 사는 거인을 보고 스스로 보기에 메뚜기 같다고 보고한 열 명의 정탐꾼과 그들의 말에 동조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고 말았다. 11.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영광을 누린다. 완전히 상반된 결과를 가져온 두 그룹의 차이가 무엇일까?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구분할 줄 아는 분별력의 차이다. 12. 믿음의 분별력 차이가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영적인 일 뿐 아니라 세상을 살아갈 때도 분별력이 필요하다. 분별력이 없으면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고 삶이 피곤하게 하고 늘 힘든 삶을 살아가게 된다. 13. 나는 우리 향기나무교회 성도님들이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믿음의 분별력이 있는 분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선한 것과 악한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성경적 지식과 지혜가 있기를 바란다.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진 성도님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어떻게?.... 14. 빌립보서 1:9절을 보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 지식에서 나온 모든 지혜를 통해 믿음의 분별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매주 예배 때 전해지는 설교를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오늘 전해지는 설교가 나를 위한 설교라고 생각하고 아멘으로 받아야 한다. 그래야 나를 위한 말씀이 된다. 15. 오후에 있는 성경 공부에도 적극적으로 참석하라. 틈나는 대로 주일 설교 말씀도 반복해서 들어라. 한 번 들어서 다 안다고 생각지 말라. 설교를 다시 들으면 처음 들을 때 못 들은 것들이 들리게 된다. 어? 이런 말씀도 있었나? 16. 내가 매주 설교를 녹음해서 보내주는 한 형제님이 있는데 그 형제님 말이 목사님 이번 설교를 다섯 번 들었습니다. 그런데 들을 때마다 새롭게 들리고 안 들리던 말씀이 새롭게 들립니다. 이렇게 말한다. 17. 매 주일 설교 말씀만 집중해서 잘 들어도 영적인 분별력이 생긴다. 내가 주일 설교 녹음한 것을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큐티 방에 올리니 시간이 날 때마다 꼭 다시 듣기를 하기 바란다. Ⅱ. 성숙한 성도는 하나님과 말씀 앞에서 정직함으로 반응한다. A. 하나님과 말씀 앞에서 정직한 성도가 성숙한 믿음을 가진 성도다. 1. 하나님과 말씀 앞에서 정직하다는 말은 자기 삶을 거짓으로 포장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정직하지 못한 성도는 자기의 잘못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지적을 해도 자기의 잘못됨을 인정하지 않는다. 회개하지 않고 변명하기에 급급한다. 2. 그러나 정직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보고 잘못된 것이 드러나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회개한 후 돌이킨다. 정직한 사람과 정직하지 못한 사람을 생각하면 나는 다윗과 사울 왕이 생각난다. 3. 사무엘상15장에는 사울 왕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명령을 내리신다. 사무엘상 15:2-3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 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4.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사울 왕은 군대를 이끌고 가서 아말렉을 공격했지만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지 않는다. 아말렉의 모든 백성들은 죽였지만 아각 왕은 살려둔다. 모든 가축을 죽이라고 하셨지만 양과 소의 살찌고 기름진 좋은 것들은 남겨놓고 가치없고 낮은 것들만 죽인다. 사무엘상 15:7-9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5.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한 사울 왕에게 사무엘 선지자를 보내신다. 사울 왕은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였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사무엘이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과 소의 소리는 무엇입니까? 사울이 말하길 “그것은 내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은 남겼습니다”라고 핑계를 댄다. 6. 거짓말이다. 기름지고 좋은 양과 소를 보자 욕심이 생겨 갖고 싶은 마음으로 죽이지 않고 남겨두었으면서 하나님께 드리려고 남겨두었다고 거짓으로 말한 것이다. 사울 왕은 부정직과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 사무엘상 15:11,26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울 왕이 죄를 지어서 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했기 때문에 망한 것이다. 자기 죄를 지적하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고 변명만 늘어놓다가 망한 것이다. 정말 그럴까? B. 정말 그렇다. 반대로 탐욕으로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반응한 다윗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1. 사울 왕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왕이 된 다윗은 자기의 충성스런 부하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데려다 강제로 동침하는 죄를 범한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탄로 날 것을 염려하여 우리아를 전쟁에 내보내서 죽게 한다. 2. 다윗은 우리아가 죽은 후 그의 아내 밧세바를 데려다가 자기 아내로 삼는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보내 다윗의 악한 행위를 책망하신다. 사무엘하 12:7-12절을 펴서 함께 본다. 3. 하나님께서 보내신 나단 선지자가 통렬하게 자신의 죄를 지적하자 다윗은 즉시 엎드려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 (사무엘하 12:13)“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4. 다윗은 비록 간음좌와 살인 죄를 지은 악한 죄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 자기의 죄를 지적하시고 책망하실 때 그는 즉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자기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한다. 그는 사울 왕처럼 구차스런 핑계를 대지 않았다. 깔끔하게 자기 죄를 인정했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다.(시편51편 참조) 5.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이 정직한 성도의 모습이다. 성도님들은 다윗처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정직하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있나? 아니면 사울 왕처럼 온갖 핑계를 대며 변명하며 자기 잘못을 포장하기 바쁜가? 6. 하나님 앞에 정직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도 정직하게 행동한다. 히브리서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7. 나는 사도 바울의 마음으로 우리 향기나무교회 성도님들이 하나님과 그 말씀 앞에 정직한 성도들로 살아가기를 축복한다. 빌립보서 1장에 나오는 빌립보 교회를 향한 권면의 말씀을 나는 우리 향기나무교회 성도님들에게 하고 싶다. 8. 날마다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정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정직하게 반응하는 삶을 살기 바란다. 매 주일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기를 비추어보고 잘못된 것이 드러나면 회개하고 고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Ⅲ. 결론 A. 오늘은 성숙한 성도에게 나타나는 성품 중 분별력과 정직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B. 나는 우리 향기나무 성서침례교회 성도님들이 영적인 일에나 세상에서도 분별력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라고 하나님과 말씀 앞에서도 정직한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