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복음 1:18-2:12 제목: 누가 당신의 왕인가? 25. 8. 24 향기나무성서침례교회 주일예배 서 병 안 목사 중심 사상: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참된 주인이시며 왕으로 모셔야 한다. 1. 성경은 사람의 지혜나 세상 이치를 담은 책이 아니다. 성경은 살아계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사람들의 생각과 계획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경륜이 가득한 진리의 책이다. 그리고 그 말씀은 우리의 영과 혼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능력이 있다. 2. 우리는 이 성경을 단지 우리 마음을 위로하는 대상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다. 내 인생의 중심과 주재권을 향해 겨누어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네 인생의 왕은 누구냐?” 이 준엄한 질문 앞에 오늘 성경은 왕 앞에서 반응하는 세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요셉과 동방박사들과 헤롯이다. 3. 자기 인생의 계획과 자신의 가치관까지 내려놓고 성령의 말씀에 복종한 요셉, 환경과 거리의 제약을 극복하고 하늘이 계시하는 진짜 왕에게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들, 그리고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 했던 헤롯. 이 세 사람은 어쩌면 오늘 여기에 있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일 수도 있다. 4. 이 설교를 통해 지금도 여전히 내 안에 감추어져 있는 욕심으로 가득한 실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내 안에 잘못된 무엇이 있는 줄 알아야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 발견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 설교의 핵심 질문은 “당신 인생의 왕은 누구인가?”이다. Ⅰ. 영원히 살아계신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 A.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가진 계획이나 기대를 깨뜨리심으로 당신의 더 위대한 계획을 시작하신다. 1. 우리는 가끔 세상의 지혜나 가치관과 충돌하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때가 있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살고자 했다. 그가 세운 인생의 계획 안에는 정혼녀 마리아와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거룩한 소망이 있었다. 2. 그러나 정혼한 마리아가 자기와 동거하기도 전에 임신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이 소식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요셉의 소망과 계획을 산산조각 내는 소식이었다. 3.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간음한 여인은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라는 율법이 있었다(신명기 22:23-24).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 자기 약혼녀가 임신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도 그는 문제를 더 키우지 않고 조용히 해결하려고 했다. 마리아를 찾아가서 따지거나 정죄하지도 않았다. 4. 그 일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긴 요셉에게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오늘 본문 20-23절 말씀을 본다. 마태복음 1:20-23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5. 의로운 성품을 가진 요셉은 그래도 끝까지 약혼녀인 마리아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혼인 약속을 조용히 끊고자 했다. 하지만 그 결정까지 도달하기 위해 요셉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6. 만약 여러분 같았으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까? B. 고민하던 요셉의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한다. 1. 마태복음 1:20-21 20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동의나 이해를 구하는 제안이 아니라, 우리가 복종해야 할 명령이다. 하나님의 사자는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알려준다. 그러면서 아이를 낳으면 이름을 예수라고 지을 것을 명령하신다. 3.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요셉은 즉각적으로 순종한다. 마태복음 1:24-25 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4. 여러분 참된 믿음은 머뭇거림이 없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의 문제로 밤새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 순종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계산을 하며 변명 거리를 찾고 있나? 계산에 매달리다 보면 중요한 시간이 다 지나간다. 5. 뿐만 아니라 순종하는 요셉은 자신의 권리까지 완전하게 내려놓는다. 25절에 보니 요셉은 아기를 낳기까지 아내와 동침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령이 일러준 대로 태어난 아기 이름을 예수라고 짓는다. 요셉이 자기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지은 것은, 내 인생과 가정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는 행위다. 6. 요셉이 대단한 이유는 남편으로서의 마땅한 권리마저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을 위해 포기했다는데 있다. 이런 모습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의 실제 모습이다. 7. 우리는 우리 앞에 다가오는 문제 앞에서 감정을 따를 것인가, 말씀을 따를 것인가? 결정해야 한다. 혹시라도 말씀을 따라야 할 결단의 순간에 ‘내가 마음이 힘들어서’, ‘내가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라는 이유로 순종을 미루고 있지는 안나? 8. 요셉은 자신의 감정, 두려움, 억울함을 하나님의 명령 앞에 굴복시켰습니다. 성도는 무슨 일에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정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9. 22-23절 말씀에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22절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10. 성도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말씀이 성취되는 현장이다. 매일의 삶에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지는 않는지? 요셉의 순종처럼 핑계 없고 타협 없는 순종의 사람이 되기를 축복한다. Ⅱ. 만왕의 왕 예수님의 지위에 합당한 예배를 드려라. A. 동방의 박사들은 이방인이지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찾아와 경배한 사람들이다. 1. 사람들은 동방박사 이야기를 주로 성탄절에만 한다. 마치 크리스마스 장식의 일부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성경을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당신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려고 하는가? 그리고 예수님을 어떻게 경배하는가?” 2. 동방박사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페르시아 지역을 떠나 약 1,500km가 넘는 멀고 험한 길을, 삼 개월 이상 여행해서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그들이 그 먼 거리와 오랜 시간을 들여서 예루살렘까지 오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3. 우리는 성경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사람들에게 묻는다. 마태복음 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우리가 그의 별을 보고..” 4. 동방의 박사들은 점성술사가 아니라, 당시 고대 근동의 천문학자이며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하늘에 나타난 특별한 별을 보다가 그것은 단순한 천문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왕의 탄생을 알리신 초자연적인 계시임을 깨달았다. 5. 그래서 그들은 짐을 꾸리고 귀한 예물(황금, 유향, 몰약)을 준비해서 하늘이 보내신 왕께 경배하기 위해 그 먼 길을 떠나온 것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찾는 자들에게 반드시 길을 보여주신다. 당시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을 갖고 있음에도 왕의 탄생에 무관심했지만, 이방인인 동방의 박사들은 별이라는 하나님의 특별 계시를 통해 왕을 찾아왔다. 6. 동방의 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데는 특별한 현상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나 학문적 연구가 아니다. 새로 태어난 왕을 향한 ‘경배’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마 2:2) “우리가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그들이 그 먼 길을 찾아온 목적은 하늘의 계시로 태어난 왕을 만나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것이다. 7. 헤롯은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찾았고(마 2:13),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구약성경을 통해 예수님에 대하여 정보는 알았지만 찾지 않았다. 오직 동방박사들만이 새로 오신 왕께 경배하기 위해 찾아왔다. 이것이 참된 신앙과 거짓 신앙, 참된 믿음과 죽은 믿음을 가르는 기준이다. 8. 여러분 우리가 왜 교회에 나옵니까? 왜 기도하고 말씀을 봅니까? 내 인생의 꼬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까? 아픈 몸을 치료받기 위해서입니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믿음 생활의 최종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높이고 예배드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9. 다른 어떤 동기(축복, 문제 해결, 인간관계)도 예배보다 앞설 수 없다. 지금 여러분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배가 우선순위 앞에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B. 동방박사 이야기는 조금씩 나태해 가던 우리의 믿음 생활에 큰 도전을 준다. 1. 동방박사들의 믿음은 어떻게 실천되었는가? 참된 믿음은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희생적으로 순종했다. 먼 동방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여정은 수개월이 걸리는 길고, 위험하며, 비용이 많이 드는 여행이다. 그들은 왕께 경배를 드리기 위해 자신의 시간, 재물, 안전을 기꺼이 희생했다. 2. 믿음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크든 작든 반드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말로만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나의 편안함을 내려놓는 커다란 대가 지불이 필요하다. 3. 동방의 박사들은 가장 귀한 것을 아기 예수님께 드렸다. (마 2:11)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이는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왕에 대한 경배를 나타내는 믿음의 예물이다. 황금(Gold): 왕의 권위와 주권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유향(Frankincense): 제사장이 하나님께 분향할 때 쓰는 거룩한 향이다. 예수님의 신성(神性)과 대제사장 되심을 상징한다. 몰약(Myrrh): 시신의 방부 처리에 쓰이는 약재다.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즉 그분의 인성(人性)과 구속 사역을 상징한다. 4. 그들은 아기 예수가 누구신지를 정확히 알았고 그 분께 합당한 경배를 드렸다. 이는 놀라운 신학적 통찰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무엇을 드리고 있나? 내 삶의 가장 귀한 것, 나의 보배합을 열어 주님께 드려야 한다. 나의 젊음, 건강, 재능, 시간, 재물을 드려 주님의 왕 되심과 거룩하심, 그리고 나를 위한 그분의 희생을 찬양하고 감사해야 한다. 5. 그들은 세상 권력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끝까지 따랐다. (마 2:12)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그들은 헤롯이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 곳을 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꿈에 헤롯에가 가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에 순종하여 다른 길을 통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6. 오늘 우리도 동방박사와 같이 믿음으로 결단해야 한다. 믿음생활의 목적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경배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 나의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님께 기쁨으로 드리는 참된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Ⅲ. 예수님이 내 인생의 진정한 왕 되심을 인정하라. A.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시다. 우리의 왕이시다. 내 인생의 왕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1.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나? 거듭난 성도들의 왕이심을 인정하나? 예수님이 여러분 인생의 왕이심을 인정하는가? 여러분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이냐는 말이다. 정말인가? 2. 우리는 이 질문에 1초라도 망설임 없이 아멘이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부분에서 흔쾌하게 아멘이라고 할 수 없다면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없애려고 했던 헤롯 왕과 비슷한 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3. 헤롯 왕은 이두매 출신이다. 이두매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에돔(Edom) 족속이 사는 지역 이름이다. 이들은 야곱의 쌍둥이 형 에서의 후손이다. 헤롯 왕은 아버지 쪽으로는 이두매인, 어머니 쪽으로는 아랍인의 피를 물려받은 인물로, 순수 유대 혈통과는 거리가 멀다. 4. 헤롯 왕의 아버지 안티파터는 뛰어난 정치적 수완으로 로마의 실력자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신임을 얻어 유대 지역의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헤롯은 이러한 아버지의 정치적 기반과 자신의 탁월한 외교술, 군사적 재능을 바탕으로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유대인의 왕’으로 공식 임명받았고, 로마 군단의 지원을 받아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기원전 37년부터 유대의 왕으로 군림한다. 5. 헤롯은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 되었지만 이방인 출신이었으니 유대인의 왕으로서 정통성이 없어서 늘 아쉬워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스룹바벨이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세운 작고 초라한 예루살렘 성전을 화려하게 중건한다. 예수님 시대 성전을 헤롯 성전이라고 부른다. 6. 이런 상황에서 동방에서 온 박사들의 입을 통해서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헤롯 왕의 입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구원의 기쁜 소식이 아니라 자기의 왕위를 위협하는 재앙의 소식으로 들린 것이다. 마태복음 2:1-3을 본다.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B. 헤롯은 유대인의 왕이 탄생했다는 기쁜 소식 앞에서 소동한다. 여기서 소동한지라 표현한 단어는 요동치다, 뒤흔들다, 두려워하다 는 뜻을 가진 단어다. 1.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이유는 두려움이다. 자기 아버지가 뛰어난 정치 수완으로 로마 황제의 신임을 얻어 어렵게 얻은 왕위인데 구약성경에 예언된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고 하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2. 나중에라도 정통성을 따지게 되면 백성들의 마음이 이방인인 자신보다 새로 태어난 유대인의 왕에게 갈 것이 분명하니 미리 죽이려는 것이다. 자기 왕위를 빼앗길 것 같은 두려움이다. 3. 그러나 사실 예수님은 세상의 왕권에는 관심이 일도 없는 분이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도 세상 왕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오직 지옥에 가는 자기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4. 그럼에도 헤롯에게 두려움이 생긴 이유는 원래 내 것이 아닌 왕위를 억지로 갖고 있으니 불안한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자기 인생에서 예수님의 왕되심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도 헤롯이 느꼈던 두려움일 수 있다. 5. 이제까지 내가 왕노릇하며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잘 살아왔는데 만약 예수님이 내 인생의 새로운 왕이 되신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더 이상 즐길 수 없게 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적당히 세상 것도 즐기고 죄도 적당히 즐기는 지금이 너무 좋은데 그 길이 막힐 것 같으니 싫은 것이다. 6. 우리가 그동안 자기 인생의 왕으로 살아왔다면 이제부터 자기가 만든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예수님께 왕위를 양도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나머지 인생을 가장 행복하게 평안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C. 예수님을 죽이려는 헤롯의 마음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1. 그리고 이것이 바로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죄의 본질이다. 죄는 전염성과 확장성이 있다. 헤롯 한 사람의 죄가 예루살렘 전체를 소동하게 만들었고, 결국 베들레헴의 무고한 아기들을 학살하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다. 죄는 결코 개인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그 사람 주위의 모든 것을 파괴한다. 2. 문제는 사람이 아무리 용을 써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을 막을 수는 없다. 헤롯은 예수님을 죽임으로 자기 왕위를 지키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계획을 막으신다. 3. 적지 않은 성도들의 마음속에 지금도 헤롯이 살고 있다. 당신의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헤롯은 무엇인가? 여러분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우선시하는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헤롯’이다. 당신의 자존심, 재물, 쾌락, 인간관계. 그 우상을 스스로 내려놓지 않으면, 그것이 당신을 여러분의 인생을 망가뜨릴 것이다. 4. 헤롯은 동방박사들을 불러서 예수님이 태어난 시간과 장소를 알게 되면 내게도 알려달라고 부탁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입술로는 주를 시인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주를 대적하고 맞서 싸우려는 생각이다. 5. 이것은 정말 가증스러운 죄다. 헤롯의 모든 말과 행동에는 ‘자기 왕좌’를 지키려는 교만과 위선이 들어있었다. 나는 과연 예수님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나?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인정하고 예수님을 내 인생의 보좌로 영접해야 한다. 6. 우리가 내 인생을 내 것이라 우기고 끝까지 왕위에 앉으려고 한다면 우리의 삶 속에 크고 작은 소동들이 멈추지 않고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오늘 헤롯왕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알려주려는 진리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