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복음 8:1-17 제목: 말씀이 내 삶에 능력으로 나타나려면 25. 12. 14 향기나무성서침례교회 주일예배 서 병 안 목사 중심 사상: 성경 말씀이 우리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능력으로 나타나는가? 1. 우리는 지난 몇 주간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예수님의 산상수훈 말씀을 묵상했다. 예수님은 소문을 듣고 자신을 만나러 온 불쌍한 사람들을 위로하시고 격려하신다. 이어서 이전 율법과는 다른 천국 백성으로서 새로운 삶의 기준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2. 오늘 본문 8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예수님은 산 위에서 새로운 천국백성의 기준을 선포하신 후, 산 위에 머물러 계시지 않았다. 서로 경쟁하고, 병들고, 고통받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있는 삶의 현장으로 내려오셨다. 3. 2025년, 성도인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어떤가? 경제적인 문제는 여전히 우리를 힘들게 하고, 육체의 질병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가족 간의 불화나 자녀 문제,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우리 마음을 어렵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산 아래의 현실이다. 4. 구약 성경에도 산 위에서 말씀을 받고 내려온 사람이 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내려왔을 때, 산 아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실패했고 범죄했다. 모세가 산 위에서 받은 율법의 말씀이 전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5. 그러나 예수님이 산상수훈의 말씀을 마치시고 산 아래로 내려오셨을 때, 똑같이 죄많고 병든 인생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하지만 이번에는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믿음이 보였고 말씀의 능력이 일어났다. 6. 여러분 신앙생활의 진짜 능력은 산 위가 아니라 산 아래에서 증명된다. 우리가 매 주일에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아멘!”하고 은혜를 받는다. 이것은 ‘산 위’에 있는 시간이다. 여기서는 모두 믿음이 좋다.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다 승리할 것 같다. 7. 그러나 우리는 다시 치열한 삶의 현장인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많은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는 믿음이 좋고 은혜가 넘치지만, 실제 삶의 현장에서는 무기력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주일에 교회 안에 있을 때와 실재 삶의 현장에 있을 때의 다름으로 인해 힘들어한다. 8. 교회에서 말씀을 들을 때는 어떤 문제든지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고, 예배를 통해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세상을 살아가는 게 어렵지 않을 것처럼 생각된다. 그런데 막상 교회의 문을 열고 세상에 발을 내딛는 순간 교회 안에 있을 때와 전혀 다른 분위기에 몸이 바싹 움츠러짐을 느낀다. 현장의 두려움이다. 9.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8장 말씀은 우리에게 도전한다. “오늘 당신이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산 아래에 있는 네 삶의 현장에서 능력으로 나타나야 한다!” 주일에 예배를 통해 들었던 그 은혜의 말씀이 당장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삶의 현실 속에서 나타나야 한다. 10. 오늘 우리는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께서 만난 세 종류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내 삶의 실제적인 능력으로 나타나는지 확인해 보고자 한다. 나는 오늘 이 시간이, 여러분의 신앙이 이론에서 실제 능력으로 변화되는 전환점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그렇게 되려면... Ⅰ. 절망 중에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A. 말씀을 듣는 자리에 머물지 말고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로 나아오면 된다. 1. 예수님이 산 위에서 말씀을 마치시고 내려오셨을 때 가장 먼저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은 문둥병 자다. 1절과 2절을 보라. 수많은 무리가 따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절을 한다. 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2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2. 예수님 당시 율법에 따르면 문둥병자는 사람들 안에 들어올 수 없는 부정한 자였다. 그가 예수님 앞에 찾아왔다는 것은 그가 돌에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사람들 사이를 뚫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다. 3. 사람이 죽을 각오를 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그만큼 문둥병자의 상황이 절박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동안 그는 문둥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갖 좋은 약을 다 썼을 것이다. 용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백약이 무효했고 용한 의사도 소용이 없었다. 그야말로 절망 그 자체였다. 4. 그런데 이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와서 한 말을 주목해 보라. 2절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이 짧은 문장에 믿음의 위대한 원리가 담겨 있다. 5. 문둥병자는 “주여, 이 문둥병을 고쳐주십시오! 이렇게 불쌍한 저를 좀 고쳐주시면 안 됩니까?”라며 떼를 쓰지 않았다. 또한 “주님이 내 병을 고칠 수 있는지 한 번 시도해 보시면 좋겠습니다”고 의심하지도 않았다. 6. 문둥병자는 두 가지를 확실히 믿었다. 첫째, “하실 수 있나이다.” 그는 예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둘째, “ 주여 원하시면” 그는 자기 인생에 대한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했다. “주님이 원하시면 내 병을 고칠 수 있음을 압니다. 내게 은혜를 베풀어 내 병을 치료해 주옵소서!” 이것이 진짜 믿음이다. B. 참된 믿음은 자기 인생의 주도권을 예수님께 완전히 넘겨드리는 것이다. 1. 예수님은 문둥병자의 믿음 앞에 어떻게 반응하셨나? 3절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율법에 따르면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면 손대는 사람까지 부정해진다. 2. 예수님은 문둥병자를 말씀만으로도 고치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굳이 문둥병자에게 친히 손을 대셨다. 왜? 보는 것조차 힘든 그 썩어 문드러진 피부, 가족조차 외면했고 아무도 만져주지 않았던 몸에 주님의 따뜻한 손이 닿았다. 그 순간 문둥병도 나았고 그동안 문둥병자가 받았던 마음의 상처는 물론 영혼까지 구원받았다. 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5년 현재 여러분의 삶을 짓누르는 문제는 무엇인가?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는 빚더미인가? 고쳐지지 않는 지병인가? 완전히 꼬여버린 인간관계인가? 아무리 그렇더라도 “나는 안 돼, 상황이 너무 나빠”라고 포기하지 말라. 4. 성도 여러분, 주일 예배 때 좋은 말씀 듣고 “아 오늘 말씀 참 좋다!”라고 끝내면 광야의 이스라엘과 같이 말씀 자체가 무능력한 것이 된다. 문둥병자처럼 나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 발 앞에 엎드리는 만남이 있어야 삶이 변한다. 5. 예수님 앞으로 나와서 주권을 인정하며 기도하면 된다. “주님, 주님이 원하시면 충분히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저를 다스려 주시옵소서!” 그렇게 머리 숙일 때 예수님의 손길이 여러분의 가장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시고 회복시키실 줄 믿는다. Ⅱ. 시공간을 초월하는 성경 말씀의 권위와 능력을 인정하라. A. 하나님의 말씀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역사하는 능력이 있다. 1. 예수님은 문둥병자를 치료해 주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셔서 거기서 한 백부장을 만난다. 백부장은 수하에 백 명의 부하를 거느리는 장교를 말한다. 이 백부장은 로마 군대의 장교다. 그런 그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간구한다. 2. 자기 하인이 중풍병에 걸려서 힘들고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당시 하인은 재산 목록의 하나일 뿐,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 백부장은 비록 하인이지만 그를 사랑했고 병들어 고생하는 그를 긍휼히 여기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 3. 하인을 사랑하는 백부장의 따뜻한 마음에 예수님께서 감동하셔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말씀하신다. 보통 사람 같 으면 “아이고 주님 감사합니다, 어서 오십시오”라고 말하며 모셔갔을 것이다. 그런데 백부장은 예수님께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한다. 8절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4. 성도 여러분, 백부장의 이 말이 얼마나 위대한 믿음의 고백인지 아는가? 백부장은 군인이다. 군대는 명령과 권위로 움직이는 조직이다. 상급자가 “가라”고 말하면 가야 하고 “오라”고 명령하면 와야 한다. 백부장은 이 원리를 영적인 세계에 적용했다. 5. 백부장이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라는 말은 절대자 앞에서 극도로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모습이다. 백부장은 권위의 원리를 정확히 이해했다. 자신이 상관의 권위 아래 있듯이, 질병도 절대자인 예수님의 권위 아래 있음을 알았다. 백부장은 자신의 부족함과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깊이 인식했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다. B. 오늘날 교회 성도들에게 필요한 믿음도 이런 백부장과 같은 겸손함이다. 1.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어떤 것을 요구하고 명령하려 한다. “하나님, 이것을 해주세요. 저것을 주세요.” 그러나 백부장의 겸손함을 보라. 자신이 비록 로마 군대 백부장이지만 겸손하게 예수님의 능력과 권위를 인정했다. 2. 우리는 사업에서 성공을 구할 때, 자신의 어떤 필요를 하나님께 구할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겸손한 태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야고보서 4:6절에 보면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말씀하고 있다. 3.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 앞에 겸손한 태도를 가질 때 하나님은 감동하신다. 로마 백부장이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며 겸손하게 하인의 병을 고쳐 달라고 요청하자 예수님은 크게 감동하신다. 4. 소위 선민이라는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눈에 보여야 믿겠다고 하는데, 이 이방인은 눈으로 보지 않고도 말씀의 권위를 믿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극찬하신다. 10절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5.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무엇이든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있어야만 “아멘!”한다. 지금은 교회 시대다. 그동안 우리는 충분히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고 예수님에 대하여 충분히 배우고 경험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만으로도 충분한 증거가 된다. C.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의 권능을 믿는 믿음이다. 1. 예수님의 칭찬을 받은 백부장 믿음의 핵심은 “말씀으로만 하옵소서”이다. 그는 예수님이 현장에 오실 필요도 없고, 손을 대실 필요도 없고, 특별한 의식을 행하실 필요도 없다고 믿었다. 오직 말씀만으로 충분하다고 확신했다. 2. 이런 믿음이 진짜 믿음이다. 광야의 백성들은 자기 힘으로 무언가 해보려다(금송아지)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백부장은 자기 노력이 아니라 “말씀만 하옵소서”라며 예수님의 권위를 전적으로 의지했다. 이것이 참된 믿음이다. 3. 신앙생활은 내 힘으로 율법을 지키려고 끙끙대는 것이 아니다. 백부장처럼 내 무능함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능력을 100% 신뢰하는 것이다. 그럴 때 하인이 낫는 기적이 일어난다. 4. 세상을 창조할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만드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창세기 1:3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능력임을 알 수 있다. 5. 여러분이 집에서 성경을 펴서 읽을 때, 그 말씀은 2천 년 전의 낡은 기록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백부장처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능력으로 믿고 따라야 한다. 6. “하나님, 지금 제게 허락하신 이 성경 말씀을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에 약속하셨으니, 이 말씀이 제 삶의 문제, 우리 자녀의 문제 , 제 직장의 문제에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이런 믿음이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믿음이다. Ⅲ. 예수님은 예언 성취를 통해 성도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A. 예수님의 능력은 우리의 가장 평범하고 사적인 가정 안에서도 나타난다. 1. 앞서 나병환자는 사회적으로 격리된 자였고, 백부장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방인이었다. 반면 14절에 나오는 베드로의 장모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의 여인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셔서 열병으로 앓아누운 여인을 보셨다. 2. 예수님은 우리의 가장 사적인 공간, 가정의 침실,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아픔이 있는 곳까지 찾아오신다. 15절을 보라.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예수님은 말씀만으로도 질병을 치료하시지만, 때로는 친밀하게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신다. 3. 예수님이 산 위에서 선포하신 능력의 말씀이 지금 나의 가정, 나의 일상, 우리 집 안방의 문제까지 해결하는 실제적인 능력이 됨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B. 예수님이 행하시는 치유와 회복은 하나님의 말씀(예언)을 이루기 위함이다. 1. 날이 저물자,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와 병든 자를 예수님 앞에 많이 데려왔고, 예수님은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쳐주신다(16절). 2. 그런데 마태는 이 기적들을 단순히 “예수님의 능력이 대단하다”로 끝맺지 않는다. 17절 말씀을 주목해 보라. 이 모든 사역의 이유를 설명한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3.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만 가져가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질병과 삶의 고통, 가난과 슬픔까지 짊어지고 가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플 때, 힘들 때 혼자 짐을 지려 하지 말라. 말씀에 의지하여 예수님께 맡겨야 한다.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시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약속)이기 때문이다. 4. 은혜를 입은 자의 마땅한 반응은 섬김으로 나타나야 한다. 열병이 떠나간 후 베드로 장모의 반응이 무엇인가? 15절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베드로 장모는 병이 낫자마자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예수님과 제자들을 대접하며 섬겼다. 이것이 치유하신 목적이자, 말씀이 능력으로 나타난 자의 올바른 태도다. 5. 많은 성도가 “하나님, 이 문제만 해결해 주시면...”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된 뒤에는 세상 즐거움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건강을 주시고, 물질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가정에 평안을 주시는 이유는 단 하나다. 6. 그 회복된 몸과 마음으로 주님과 교회를 섬기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능력이 되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무엇인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한 이후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자리에 있는가?를 보면 된다. 7.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만 가져가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질병, 우리의 아픔, 우리의 슬픔, 우리의 가난함까지 다 짊어지셨습니다. C. 결론 1. 이제 말씀의 결론을 맺는다. 이제 예배가 끝나면 우리도 곧 예배당 문을 나서 삶의 현장, 즉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그곳에는 여전히 문둥병 같은 문제, 하인의 질병 같은 고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선포하시고 친히 산 아래로 내려오신 예수님과 동행하셔야 한다. 그분의 손을 잡고 내려가라. 그럴 때 우리의 삶의 현장은 실패의 자리가 아니라, 삶이 회복되는 기적의 현장이 될 것이다. 3. 예수님은 교회 안에만 계신 분이 아니다. 그분은 산에서 내려와 문둥병자 같은 절망적인 인생에게, 백부장 같은 이방인에게, 베드로의 장모 같은 평범한 가정 속에 찾아가셨다. 이 말씀을 들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4. 첫째, 자신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주님께 가지고 나오라. 나병환자처럼 체면도 자존심도 다 버리고 나오라.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 앞에 납작 엎드리라. 하나님이 도우시면 회복되지 않을 문제가 없다. 5 . 둘째, 말씀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라. 백부장처럼 눈에 보이는 증거를 찾지 말고, 기록된 성경 말씀을 붙들면 된다. “하나님 말씀만 하옵소서!" 이 고백이 여러분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말씀대로 역사하신다. 6. 셋째, 회복된 삶으로 주님을 섬기라. 예수님은 말씀을 이루기 위해 우리의 연약함을 대신 지셨다. 그 은혜로 내 인생이 회복되었다면, 이제 베드로의 장모처럼 일어나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헌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