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복음 1:1-17 제목: 예수님의 족보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 25. 8. 17 향기나무성서침례교회 주일예배 서 병 안 목사 중심 사상: 예수님의 족보는 사람들의 약점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 준다. 1. 여러분, 집에 집안의 족보나 오래된 가족사진 있나? 부모님이 계신 시골집에 가면 벽에 걸린 흑백 사진 속에서 낯설기도 하고 한편으로 보면 나와 닮은 듯하기도 한 얼굴들을 보게 된다. 2. 분명 할아버지 할머니거나 아니면 가까운 친척 중 한 분인데 부모님이 설명해 주지 않으면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다. 족보에 나온 이름도 마찬가지다. 이름만 보고는 그분들이 어떤 삶을 사셨는지, 어떤 삶을 사셨는지 우리는 다 알지 못한다. 3.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1장은, 마치 오래되어 빛바랜 가족사진이나 족보와 같다. 큰맘 먹고 성경 일독을 하기 위해 신약성경 마태복음 1장을 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1절부터 낯선 이름들이 계속 나오게 되면 우리는 금방 지루함을 느낀다. 이게 하나님을 믿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지? 라고 생각할 것이다. 4. 그러나 만약 지루해 보이는 이 족보가 성경 전체를 덮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대한 전주곡이며, 죄와 절망 속에 있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기록이란 것을 알고 나면 우리는 다르게 반응할 것이다. 5. 우리는 늘 부족한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능력도 부족하고 가진 것도 부족하다. 때로 넘어지기도 하고 또 실패하기도 한다. 그리고 죄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부족함들로 인해 우리의 앞날이 절망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6.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감동을 통해 마태가 복음서를 기록할 때 의도적으로, 그리고 아주 치밀하게 예수님의 족보를 맨 앞에 배치하게 하신다. 무엇 때문일까? 이 족보가 앞으로 있을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것인지 말해주는 서론과 같다. 7. 원래 족보에는 자랑스러운 이름들을 올리는 것이 상례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에는 위대한 믿음을 가진 조상들의 이름도 있지만 그들이 감추고 싶고 부끄럽게 여길만한 이름과 실패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8. 마태는 사람들의 실패와 절망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여기 나오는 모든 사람을 은혜로 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너희를 사랑하시며 너희에게도 은혜를 베푸신다.” 9. 혹시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나 같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실까?” “현재 내가 처한 환경이나 과거의 실수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어”라고 생각하는 분은 없기를 바란다. 10. 오늘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이름들을 통해, 여러분을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발견하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족보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복을 나눈다. Ⅰ. 예수님의 족보에는 사람이 정한 경계를 허무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1. 하나님은 여러분의 배경을 보지 않으신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다말, 라합, 룻과 같이 당시 사회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이방 여인들의 이름이 들어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혈통, 출신, 사회적 지위의 경계를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 유대인들에게 족보는 생명과도 같이 중요하다. 누가 아브라함의 혈통인가, 누가 다윗의 자손인가는 그들의 정체성이자 자부심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기록한 마태복음 1:1절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라는 말로 시작한다. 3. 그런데 마태는 이 자부심 가득한 유대인의 족보에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이름을 올린다. 이방 여인이었던 다말, 라합, 룻, 그리고 우리야의 아내(밧세바)다. 이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4. 당시 고대 근동의 족보는 철저히 남성 중심이다. 여인의 이름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만약 넣는다고 해도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나 이삭의 아내 리브가, 야곱의 아내 레아와 같이 존경받는 믿음의 여인들이어야 했다. 5. 그런데 성령께서는 마태를 통해 상상 밖의 이름을 언급하신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들이 정한 모든 경계, 즉 성별, 인종, 신분, 도덕적 편견에 매이지 않음을 보여주신다. A. 먼저 다말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우리는 다말 이야기에서 수치스러운 가정사를 끌어안는 하나님의 은혜를 본다. 1. 다말 이야기는 창세기 38장에 기록된, 유다 가문의 가장 감추고 싶은 치부다. 3절에 보면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유다와 다말은 시아버지와 며느리 관계다. 2.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동침을 해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윤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비난받을 일이요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성경은 보통 사람이라면 감추고 싶은 이 사실을 이스라엘의 족보에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3. 하나님은 다말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완전하지 못함을 알리신다. 그러나 사람들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신실하게 유지됨을 보여주신다. 3. 우리에게도 숨기고 싶은 가정의 아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수치스러운 과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여러분의 아픔이나 약점들이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막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나의 아픔과 나의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로 나를 판단한다. 4.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나의 아픔과 수치를 덮고 오히려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통로로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부족한 사람도, 실패한 사람도 버리지 않으신다. 오히려 은혜로 그 상처를 치유하시고 은혜로 나의 감추고 싶은 수치를 덮어주신다. 5.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을 생각해 보라. 그 여인은 다섯 번이나 결혼에 실패한 아픈 과거가 있다. 사람들은 그녀의 아픈 부분을 위로하기는 커녕 오히려 손가락질한다. 그 여인은 그런 꼴 당하기 싫어서 한낮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정오가 되면 우물에 갔다. 그랬던 여인이 우물가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나 은혜 안으로 들어갔을 때 오히려 사람들을 찾아가 예수님을 자랑한다. “와 보라 이분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아니냐!” 6. 누구에게나 남들에게 말못할 가정의 아픔과 상처가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아시고 당신의 계획 안에 두신다. 여러분 사람들의 평가에 매이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보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지가 중요하다. 우리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다. 7. 하나님은 어두운 곳에서도 일하신다. 내 인생의 가장 어둡고 수치스러운 순간조차도 하나님은 선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실 수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결단할 때 우리를 귀한 일에 사용하신다. 8. 다말은 죽음의 위험을 감내하면서 언약의 가문에 참여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여인이 음행을 하면 붙잡아다가 불에 태워 죽였다. 다말은 음행 죄로 불에 태워 죽기 직전에 시아버지에게 받은 도장과 지팡이와 끈을 보여줌으로 생명을 건진다. 9. 하나님은 여러분의 작은 믿음의 결단을 통해 위대한 일을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은 유다와 며느리 다말의 불륜이라는 수치스런 관계를 은혜로 덮어주시고 아브라함과 맺 은 언약을 신실하게 진행하신다. B. 두 번째는 여리고 기생 라합의 이야기다. 라합 이야기에서 신분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본다. 1. 라합(5절)은 여리고 성에서 장사하던 이방인 기생이었습니다. 당시 기생은 술도 팔고 몸도 팔고 숙소도 제공하는 그런 천한 신분이다. 라합은 태생적으로는 이방인이고 천한 직업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거룩한 계보에 오를 자격이 전혀 없었다. 2. 그러나 라합은 하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했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정탐꾼들을 숨겨주는 믿음의 결단을 내린다. 하나님은 라합의 직업이나 민족을 보시지 않고 오직 그녀의 믿음 하나만을 보셨다. 그리고 그녀를 구원하셨고 다윗 왕의 조상이 되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히셨다. 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과거가 어떠했든지, 세상이 나에게 어떤 꼬리표를 붙였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로 들어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주홍 같은 죄를 눈과 같이 희게 하며, 우리의 신분을 땅에서 하늘로 바꾸어 놓는다. 4. 세상은 나를 주홍 글씨로 낙인찍지만, 하나님은 내 인생을 영광스런 금빛 인생으로 바꾸어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나의 모든 부끄러움을 덮어주며 나를 새롭게 창조하신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5. 라합이 믿음으로 반응했을 때 하나님은 라합은 물론 그의 가족까지 구원해 주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러 갈 때 여리고 성을 반드시 지나야 했다. 여리고 성에서 기생으로 일하던 라합은 믿음으로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주었고 라합은 가족들을 구원하는 구원의 통로로 쓰임받는다. 6. 라합은 하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했다. 마찬가지다. 여러분들이 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할 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여러분의 믿음 하나가 온 가족을 구원하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다. 가족 구원을 위해 기도하기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7. 라합에게 붉은 줄은 구원의 약속이었다. 오늘 우리에게는 십자가라는 분명한 약속의 증표가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가 어떠했든, 이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존귀한 백성이다. 새로운 신분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축복한다. 8. 모압 여인 룻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신명기 23:3에 의하면 모압 사람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저주를 받았다. 율법에 의하면 룻은 결코 구원받을 수 없는 이방인이다. 그러나 그녀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향해 은혜를 베풀었고 보아스는 룻이 자기 시어머니에게 베푼 은혜를 듣고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은혜를 베푼다. 9. 하나님의 은혜는 율법의 저주보다 강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나오는 세 여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혈통이나 배경, 도덕적 깨끗함에 달려 있지 않다. 10. 하나님의 은혜는 세상의 모든 차별과 경계를 무너뜨린다.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믿음으로 나아오는 모든 자에게 차별 없이 주어지는 선물이다. Ⅱ. 예수님의 족보에는 실패한 인생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A. 예수님의 족보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과 같은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뿐 아니라, 그들의 죄와 연약함까지 가감 없이 보여 준다. 1.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인간의 위대함이나 완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신실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 위에 세워져 있음을 보여준다. 2. 아브라함부터 다윗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어지는 족보의 기간을 계산해 보면 총 이 천년 정도 된다. 이 오랜 시간 동안 믿음의 사람들은 성경에 다 기록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죄를 짓기도 했고 실패하고 넘어졌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신실하게 언약을 이루어 가신다. 3. 다윗은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직후에 가장 끔찍한 죄를 짓는다. 자신의 충성스런 부하 우리야의 아내에게 간음죄를 저지른다. 그리고 우리야의 아내가 자기 아기를 임신을 하자 자신의 부정한 죄가 드러날까 두려워 충성스런 부하 우리야를 전쟁에 내보내서 죽게 한다. 4. 다윗은 간음죄는 물론 살인죄까지 저지른 용서받을 수 없는 악한 죄인이다. 다윗 이후의 왕들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왕들을 보면 모두 배교한 왕들의 역사다. 솔로몬은 말년에 우상숭배에 빠졌고, 르호보암은 나라를 분열시켰으며, 므낫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 중 하나였습니다. 5. 예수님의 족보는 이들의 실패를 미화하거나 감추지 않는다. 성공한 왕과 실패한 왕, 선한 왕과 악한 왕의 이름이 교차하며 기록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6. 이스라엘의 역사는 인간 왕들의 실패한 역사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실패의 역사 속에서도 메시아를 향한 당신의 약속을 단 한 번도 중단하지 않으시고 신실하게 이어오셨다는 것을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 보여준다. 7.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됩니까? 우리는 자주 넘어진다. 때로는 다윗처럼 더러운 죄를 짓기도 하고, 므낫세처럼 하나님 앞에서 교만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은혜는 우리의 죄나 실패보다 훨씬 크다. 8.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의로움이나 신실함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의 실패와 배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한다. 우리는 자주 죄에 걸려 넘어진다. 때로 실패할 때도 있다. 9. 그러나 혹시 죄와 유혹으로 인해 넘어졌다고 해도 넘어진 그 자리에서 절망하지 말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를 은혜로 덮고 더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써 내려가신다. 10. 다윗은 나단의 책망 앞에서 변명하지 않고 즉시 회개했다(시편 51편). 하나님은 상한 심령으로 회개하며 나아오는 모든 죄인을 용납하신다. 그리고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끔찍한 죄를 지은 다윗을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사용하셨다. 11. 여러분이 죄로 인해 넘어졌다고 해도 그 실패가 여러분 인생의 끝이 아니다. 하나님은 다시 일어설 힘과 기회를 반드시 주신다. 아무리 끔찍한 죄라 할지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보다 클 수는 없다. 죄책감에 머무르지 말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라. B. 하나님은 은혜 안에서 잊혀진 세대까지 기억하고 다시 세우신다. 1. 마태복음 1:12절 이후를 본다. 12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를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2. 왕도 없고, 선지자도 없고, 기적도 없는 침묵의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세상을 향한 구원의 계획을 진행하고 계셨다. 사람들이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는 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멈추지 않고 일하고 계신다. 3.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들의 순종을 사용하신다. 스룹바벨, 스알디엘, 아비훗, 엘리아김, 아소르, 사독, 아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 이름들은 평범한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했던 사람들이다. 4.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시작은 초라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대단해 보이지 않는 그 작은 순종을 통해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셨다. 오늘 우리가 하는 작은 순종들이 쌓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길이 예비될 것으로 믿는다. 5. 예수님의 족보 속에 여러분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고 상상해 보라. 유명하지 않은 이름일 수도 있고 다말이나 라합 그리고 룻처럼 드러내지 않고 싶은 이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상태와는 관계없이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 을 통해 하나님의 귀한 사역을 이루어 가실 것이다. Ⅲ. 예수님의 족보에는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A. 길고 지루해 보이는 족보의 끝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도달한다. 1.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그리고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그리고 바벨론으로 이거한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 모두 이천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다. 2. 이 이천년이란 시간 동안 사람들의 연약함과 죄가 있었고 믿음의 사람들은 넘어졌고 실패했다. 그러나 그런 여러 가지 사건과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셨다. 그러니까 아브라함 훨씬 이전, 창세 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도착한 것이다. 3. 모든 기다림의 끝은 예수님이다. 지금 여러분의 인생은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내가 무엇을 향해 가든지 간에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멈추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4. 우리는 모든 세상 역사와 목적과 완성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구약에 믿음의 사람들과 맺은 언약대로 모든 과정을 신실하게 이루어 주셨다. 그 결과물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민수기 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B. 오늘 우리가 살펴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2000년 전에 기록된 낡은 족보가 아니다. 1.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는 바로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다. 우리 역시 이 족보에 기록된 사람들처럼 연약하고, 상처받았고, 때로 부끄러운 과거를 가진 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위대한 구원의 역사에 참여시키셨다. 2.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 기뻐하는 딸이다”라고 말씀해 주신다. 이제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우리의 삶을 통해 계속 기록되고 있습니다. 3. 세상은 우리에게 너의 자랑이 무엇이냐? 당신이 이룬 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우리는 담대하게 이런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유일한 자랑은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요, 나의 유일한 신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우리에게 실패와 부끄러움을 꼬리표처럼 붙이려 할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약점과 수치를 은혜로 덮으시며, 우리를 위대한 구원 역사에 동참시키는 영광을 허락하신다. 더 이상 세상의 시선에 묶이지 말아야 한다. 5. 2,000년의 긴 기다림 끝에 성경이 약속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2,000년 전의 약속을 성취하신 분이시다. 힘들고 고된 삶의 여정 속에서 때로는 지치고 넘어질지라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신실한 은혜로 채워져 있다. 6. 지금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계속해서 써 내려가고 계신다. 오늘 이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당당하게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C. 결론 1. 예수님의 족보에는 사람이 정한 경계를 허무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2. 예수님의 족보에는 실패한 인생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3. 예수님의 족보에는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