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부르심과 나의 선택
작성자 : pts | 작성날짜 : 2026-03-01 | 수정자 : pts | 수정날짜 : 2026-03-01

본문: 마태복음 4:18-25 제목: 예수님의 부르심과 나의 선택 25. 9. 28 향기나무성서침례교회 주일예배 서 병 안 목사 중심 사상: 예수님의 부르심은 나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다. 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 많은 ‘초청’을 받습니다. 저 같은 경우 이번 9월에만 무려 여섯 번의 각종 모임에 초청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정말 바쁜 9월 일정이었다. 2. 아마 여러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친구나 친지의 결혼식 청첩장, 돌잔치 초대장, 동창회나 각종 모임 등 때로는 반가운 초청장도 있고 때로는 부담스러운 모임에 오라는 초청장도 있다. 3. 우리는 그 초청장 앞에서 늘 ‘선택’을 해야 한다. 그 초청에 응할 것인가, 아니면 거절할 것인가. 어떤 초청은 우리의 하루를 즐겁게 하지만, 어떤 초청은 우리의 인생 전체의 경로를 바꾸어 놓기도 한다. 4.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는 이 세상의 어떤 초청보다 더 귀중하고 영광스러운 자리로 초청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갈릴리 해변에서 평생을 그물과 씨름하며 살아가던 어부들이다. 5. 어느날 예수님은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던 베드로와 안드레, 구멍 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야고보와 요한, 이 네 사람에게 찾아가신다. 그리고 그들의 인생을 영원히 바꿔놓을 위대한 초청의 말씀을 건네신다. 6.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수님의 이 부르심은 일방적인 명령처럼 들릴 수 있지만, 동시에 그들의 인생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거룩한 초청이었다. 7. 2000년 전 갈릴리 해변에서 제자를 향해 외쳤던 예수님의 부르심이, 2025년 오늘 이 시간, 대한민국의 복잡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오늘 설교 제목은 ‘예수님의 부르심과 나의 선택’이라고 정했다. Ⅰ. 예수님의 부르심은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으로의 초청이다. A.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자기 일에 성실하게 일하고 있었다. 1. 오늘 본문 마태복음 4:18절과 21절을 본다. 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을 지나시다가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로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고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배에서 그물을 깁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3. 예수님은 물고기 잡는 어부로 생활하는 그들에게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물고기 잡는 어부와 사람을 낚는 어부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4. 고기 잡는 어부는 살아있는 물고기를 잡아 죽이는 일이라면, 사람을 낚는 어부는 죄와 사망의 깊은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영혼들을 건져내어 생명을 주는 살리는 일이다. 5. 어부의 삶은 물고기를 잡아서 시장에 팔고, 그 돈으로 먹고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은 그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사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6. 그동안 그 네 사람의 세상은 갈리리 호수였다. 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오늘 물고기를 더 많이 잡을까?’였다. 그것이 그들 세계의 전부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작은 세상에 갇혀 있던 그들을, 하나님의 위 대한 구원 사역이라는 거대한 바다로 불러내셨다. 7. “고기를 낚지 말고, 이제부터 나와 함께 사람을 낚자.” 얼마나 가슴 뛰는 초청입니까? 내 가족, 내 배, 내 그물이라는 작은 테두리에 갇혀 그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던 그들을 온 세상에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여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내는 위대한 사역으로의 초청이다. 8.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이것이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로 물고기를 잡으며 하루하루 걱정과 염려 가운데 살아가던 제자들을 온 천하라는 세상으로 불러내신 예수님의 위대한 사역으로의 초청이다. B.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교회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1. 어떤 분들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사람 낚는 어부’라는 부르심은 베드로나 안드레나 아고보와 요한같은 특별한 사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평범한 나같은 사람에게는 너무 거창한 사명처럼 들려. 2. 그러나 성경은 명확히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셔서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시작하셨듯이, 교회 시대인 지금은 바로 저와 여러분,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을 ‘교회의 일꾼’으로 부르셔서 사역을 이루어 가신다. 3. 예수님이 갈릴리 어부들에게 주셨던 ‘사람 낚는 어부’라는 사명은 교회 시대의 ‘충성된 교회의 일꾼’으로 그 의미가 이어진다. 에베소서 4:11-12절을 본다.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4. 예수님께서 일꾼을 부르시는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교회를 세우는 일이다. 성도들을 일꾼으로 세워 ‘봉사의 일’, 즉 교회 세우는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천 년 전에는 제자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지만 지금 우리는 교회의 일꾼으로 부르셨다는 말이다. 5.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가장 큰 이유는 단지 세상에서 우리가 잘 먹고 잘사는 것만을 위함이 아니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단지 자기 인생에 있어 무언가 도움을 주는 ‘플러스알파’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은 이유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6. 먼저는 죽어있는 영혼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고 다음은 망가지고 엉킨 인생을 완전하게 재정비하는 ‘리셋(reset)’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예수님이 주시는 가장 가치 있는 위대한 사명을 얻기 위해, 내 삶에서 ‘덜 가치 있는 그물’을 내려놓아야 한다. 7.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고 버린 것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고기잡는 그물이었지만, 그들이 얻은 것은 온 세상을 구원할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영광스러운 사명이었다. 그들이 포기한 것은 갈릴리라는 작은 호수 위에서의 삶이었지만, 그들이 얻은 것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이었다. 8. 당시 제자들이 포기한 그물과 배를 끝까지 붙잡고 산 갈릴리의 많은 어부들의 이름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름을 위해 그물과 배를 버린 제자들의 이름은 성경에 기록되어서 영원히 빛나는 이름이 되었다. 9. 하나님은 이 위대한 사역에 여러분들을 초청하신다. 세상에서는 학식이 높거나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선택하고 초청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름 없는 갈릴리의 어부들을 초청하셨다. 하나님은 자격 있는 사람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부르셔서 자격을 주시는 분이시다. 10. 예수님의 여러분을 향한 부르심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으로의 초청이다. 예수님의 이 위대한 초청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Ⅱ. 예수님의 부르심을 통해 내 안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라. A. 예수님의 부르심이 우리를 위대한 사역으로 이끌어 간다면, 그 부르심은 동시에 우리의 시선을 우리 내면으로 향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내 안에 숨겨진 새로운 가치와 정체성을 발견 하게 하신다. 1. 제자들의 이름 앞에는 늘 ‘어부’라는 직업이 따라다녔습니다. ‘어부 시몬’, ‘어부 안드레’. 그것이 그들의 정체성이었고, 그들의 인생의 가치를 규정하는 이름표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다. 2. 그 사람의 하는 일이 무엇인가에 따라 정체성이 부여되고 그 사람 인생의 가치를 규정하는 것도 그 사람의 직업이다. 소위 ‘사’자가 붙는 변호사, 판사, 의사 그리고 또는 2-3급 이상의 고위 관리 정도쯤 되면 그 사람의 성품이나 인격, 그리고 신앙은 아무 관계 없는 것이 되고 오직 그 사람 앞에 붙은 타이틀만 기억한다. 3.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김 대리’, ‘박 과장’, ‘사장님’ ‘누구 엄마’, ‘아무개 학생’과 같은 세상이 붙여준 이름표를 달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이름표가 나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며 때로는 우쭐하기도 하고 때로는 좌절하거나 낙심하기도 한다. B.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이름표 뒤에 숨겨진 진짜 내면의 모습을 보시는 분이시다. 1. 예수님은 물고기만 잡던 어부 시몬에게서 수많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할 ‘사람 낚는 어부’의 잠재력을 보셨고, 훗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반석(베드로)’이 될 것을 미리 보셨다. 그는 성미가 급하고, 혈기왕성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실패자였다. 2. 사도행전 2:38-42절을 보면 오순절 날 베드로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구원받고 침례받은 성도의 수가 자그마치 삼천 명이나 되었다. 예수님의 약속대로 사람을 낚는 위대한 어부가 된 것이다. 베드로가 잘나서가 아니다.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약속이 그의 삶에서 성취된 것이다. 3. 안드레는 조용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역할은 교회가 세워지는 데 있어 결정적이었다. 그는 특히 사람과 예수님을 연결하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난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자기 형제 시몬(베드로)을 찾아가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요 1:41)고 말하며 그를 예수님께로 데려온 사람이다. 4. 그리고 오병이어 기적 당시, 제자들이 모두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 안드레는 한 아이가 가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예수님께로 데려와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는 기초가 된다(요 6:8-9). 5. 야고보는 예수님의 핵심 측근 3인방(베드로, 야고보, 요한) 중 한 명이다. 그의 신앙은 뜨거운 열정과 타협하지 않는 헌신으로 특징지어집니다. 예수님은 야고보에게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습니다. 이는 그의 불같은 열정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6. 그리고 변화산에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실 때,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뇌하며 기도하실 때 등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사역과 고난의 현장에 야고보는 늘 함께 있었다. 그는 지식으로만 예수를 안 것이 아니라,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 겪으며 온몸으로 예수를 경험했다. 야고보는 최초의 순교자이기도 하다(행 12:1-2). 6.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네가 지금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중요하지 않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를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주겠다(I will make you fishers of men.)” 7. 이것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담긴 창조적인 능력이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단순히 우리에게 새로운 일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지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로 우리를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담긴 부르심이다. 8. 세상은 우리의 학력, 외모, 우리의 자격증 등, 스펙과 배경을 보고 우리를 판단하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가신다. C. 나는 우리 향기나무 성서침례교회 성도님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통해 자기 안에 감추어진,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자신의 참된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1. 나 같은 경우도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만나서 구원받고 나서 내 안에 잠재되어 있 는 나의 참된 가치를 발견한 케 이스다. 늘 수줍음 많고, 나서기 싫어하고, 마음이 여려서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마디 못하던 사람이다. 근데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받고 나니까 남에게 말하는 것이 왜 그렇게 재미있는지 지금은 말을 너무많이 해서 가능한 말을 아끼는 편이다. 2.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 잠재되어있는 여러분의 참된 가치와 정체성은 세상이 아닌, 나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 비로소 발견된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순간, 여러분의 이름표는 바뀐다. 3. 우리는 더 이상 ‘죄인 아무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아무개’가 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성공을 좇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됩니다. 여러분의 가치는 여러분의 연봉이나 아파트 평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4. 여러분의 진짜 가치는 하나님의 아들이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놀라운 사실로 결정됩니다. 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더 이상 세상을 부러워하거나 세상 앞에서 위축되지 않습니다. 4. 우리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때 일어나는 가장 큰 정체성의 변화는 이것이다. 나는 더 이상 주일에 교회에 와서 예배만 드리고 돌아가는 ‘손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함께 세워나가는 ‘주인’이요, ‘일꾼(worker)’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이 새로운 정체성을 깨달을 때, 우리의 신앙생활은 더 이상 의무감이 아닌 기쁨과 감격의 사명이 될 것이다. Ⅲ.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르면 버린 것보다 더 큰 것으로 갚아주신다. A.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성도에게 대가로 큰 보상이 주어진다. 1. 예수님의 부르심에 따르기 위해서 제자들은 여러 가지를 버려야 했다. 평생 일터에서 함께 하던 그물을 버렸다. 그물은 그들의 생계 수단이자 재산이었습니다. 세상적인 안정과 보장을 상징한다(마가복음 10:21). 2. 그리고 배를 버렸다. 배는 그물보다 훨씬 큰 재산이며, 미래를 지켜주는 안전한 보호막과 같다. 어부에게 배는 그들의 미래의 계획과 꿈을 상징한다(누가복음 14:33). 그리고 아버지까지 버렸다. 이것은 분명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3.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단순히 취미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인생의 주인을 바꾸는 것이다. 내 삶의 우선순위를 완전히 새로 짜야 한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따라가려면 내가 그동안 의지했던 것, 익숙한 것을 내려놓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혹시 여러분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따르려고 할 때 그 선택을 방해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4. 그것이 직장일 수도 있고, 자녀의 성공일 수 있으며, 사람들의 인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억하라. 우리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위해 세상의 것들을 내려놓을 때, 예수님은 하늘의 것으로 보상해 주신다. 우리가 세상의 썩어질 것을 포기할 때, 주님은 영원한 것으로 갚아주신다. 5. 에콰도르에 선교사로 가서 순교한 짐 엘리엇은 그의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할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르기 위한 버림은 잘못된 선택이나 실수가 아니라,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한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었다(빌립보서 3:8). 6. 우리 역시 주님을 따르기 위해 때로는 세상의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고, 시간과 물질을 드려야 하며, 때로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약속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버리고 포기한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니라, 가장 확실하고 위대한 투자라고 말이다. B. 신앙은 ‘거룩한 교환’이다. 덜 가치 있는 것을 드리고,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받는 것이다. 1. 제자들이 무엇을 드리고 무엇을 받았는지 계산해 보라. 그들은 낡은 그물과 배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젠가 썩어 없어질 것들이다. 그들은 그것을 내려놓고, 영원히 남는 ‘의미’를 얻었다. 2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갈릴리의 많은 어부 중 단 한 명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2. 그러나 예수님을 따랐던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의 이름은 전 세계 수십억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존경하며 기억하고 있다. 그들의 순종이 그들의 삶을 유한한 것에서 영원한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3.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를 떠났다. 이것은 분명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과 매일 함께 먹고, 자고, 이야기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친밀하고 영광스러운 관계를 누리게 되었다. 순종은 우리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는 통로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요, 가장 큰 축복이다. 4.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서 구체적으로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5.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포기한 물질은,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으로 채워질 것이다. 주님을 위해 희생한 관계는, 교회라는 새로운 가족 안에서 백 배의 사랑과 위로로 회복될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서의 모든 수고 끝에, 우리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이 약속되어 있다. 이 약속을 믿는 자는 기꺼이 주님을 위해 나의 것을 내어드릴 수 있다. C. (결론) 말씀을 맺는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 섰던 제자들, 그리고 그 부르심 앞에 서 있는 우리 자신을 보았습니다. 1) 예수님의 부르심은, 내 작은 인생을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에 연결시키는 영광스러운 사역으로의 초청장입니다. 2) 예수님의 부르심은, 세상이 매긴 값싼 이름표를 떼어내고 하나님 자녀라는 나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게 하는 거울입니다. 3) 예수님의 부르심은, 내가 드리는 작은 희생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신령한 복과 영원한 생명으로 갚아주시는 가장 확실한 약속입니다. 1. 이 위대한 예수님의 위대한 초청장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이름으로 도착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예수님의 초청을 받아들여 내 인생 최고의 모험을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이 초청장을 외면하고 의미 없는 삶의 그물에 계속 갇혀 있을 것인가? 2. 예수님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시며,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고 계신다. 2000년 전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그 부르심에 ‘예’라고 응답했고, 그 선택은 그들의 인생과 인류의 역사를 바꾸었다. 3. 오늘은 예수님 당시 갈릴리 해변보다 더 복잡하고 시끄러운 내 인생의 해변에 찾아오신 주님께,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나? “주님, 저를 위대한 사역에 사용하여 주옵소서. 주님 안에서 저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것을 내려놓고 주님이 주시는 더 큰 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4. 이 믿음의 선택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의 남은 생애가 주님과 함께 써 내려가는 위대한 이야기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