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작성자 : pts | 작성날짜 : 2026-03-01 | 수정자 : pts | 수정날짜 : 2026-03-01

제목: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본문: 마태복음 5:1-12 25. 10. 5 향기나무성서침례교회 주일예배 서 병 안 목사 중심 사상: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는 예수님 한 분만 있으면 해결됩니다. 1.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마태복음 5장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익숙한 말씀이다. 이른바 ‘팔복’이라고 불리는 이 말씀을 최소한 몇 번은 들었고, 암송도 하던 말씀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이 말씀을 원래 뜻대로 이해하고 있을까요? 2.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셨을 때, 예수님을 따라 산을 올라간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각색 병든 자들, 귀신 들린 자들, 간질 병자, 중풍 병자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예수님을 따라 산에 올라간 사람들이다. 3. 이들이 왜 산에 올라갔을까? 이 사람들은 병이 들거나 몸이 불구인 사람들로 사는 것 자체가 힘겨운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예수님께 가면 위로받고, 쉼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힘들게 산에 올랐다. 4. 지금도 이들과 비슷한 형편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구원받고 믿음 생활을 하는 성도 중에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신음하는 사람들,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가정 문제로 눈물 흘리는 성도들도 있다. 5. 이런 분들은 오늘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만나러 교회에 찾아온다. 사람들이 왜 교회에 오나? 교회에 오면 하나님의 위로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쉼을 얻고 망가진 인생에 구원의 소망이 생긴다고 믿기 때문이다. 6. 그런데 문제는 지금 교회 안에도 이천 년 전 바리새인들이 가르쳤던 율법적인 가르침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더 기도해라. 교회 일에 더 헌신해라. 더 열심히 봉사해라. 그러면 하나님이 복 주신다.” 7. 그런데 이런 설교와 가르침들은 사는 게 힘들어서 찾아온 성도들에게 더 무거운 짐을 지게 만든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그러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지쳐가게 된다. 8. 지금까지 우리가 들어온 설교는 거의 비슷했다. “가난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천국이 너희 것이다. 애통하는 자가 되라, 그러면 너희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다. 온유한 자가 되라 그러면 땅을 차지하게 된다.” 이것이 정말 예수님의 의도하신 말씀일까? 9. 우리는 그동안 산상수훈의 나오는 팔복의 내용을 오해했다. 내가 더 무엇을 해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을 얻을 수 있다는 오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했는데 사람들은 율법의 명령처럼 행위 중심으로 바꾸어 버렸다. 10. 나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오늘 산상수훈의 참된 의미를 찾고자 한다. 참된 의미를 알게 되면 이 설교가 끝날 때 여러분의 입에서도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라는 고백이 나오게 될 것으로 믿는다. Ⅰ. 예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할 때 우리 인생에 소망이 생긴다. A.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우리를 위해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라. 1. 오늘 성경 본문을 읽는다. 마5:3-6절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2. 우리는 흔히 '심령이 가난한 것'을 겸손한 마음이나 영적인 파산처럼 내면의 상태로 해석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가난은 그런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들에게 가난은 뼈아픈 현실 그 자체다. 그들은 돈이 없어 가난했고, 사회적으로 멸시받고 소외된 사람들이다. 3. 당시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부자가 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가난은 하나님의 저주나 죄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죄인 취급을 받았다. 그들에게 가난이란 의미는 처절한 생존의 문제다. 하가하게 마음이 가난하다. 이런 상황은 배부른 사람이 하는 소리다. 4.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가난한 너희가 복이 있다”고 선포하신다. 왜? 너희의 그 가난함 때문에, 복의 근원이 되는 나를 찾아왔으니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 되었다. 아이러니한 이야기 아닌가? 5. 당시 부자인 바리새인이나 제사장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예수님이 천국 복음을 선포해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배부른 사람에게 밥 먹으라고 말해도 관심이 없는 것과 같다. B. ‘애통하는 자’가 누릴 복도 마찬가지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1. 그들은 이미 애통하는 삶을 살아왔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 질병의 고통, 가난의 눈물, 차별과 멸시의 상처... 그들의 삶은 온통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특히 그들이 흘린 눈물 중에는 영적인 애통함도 있었다. 2. 죄인으로서 멀리 성전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그 아픔, 다른 사람들은 성전에 들어가 제사를 드리는데 자기는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던 서러움, 들어가서 속죄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고 싶은데 몸 때문에, 질병 때문에 들어갈 수 없을 때 느꼈던 절망감... 이런 애통함이 그들의 가슴에 가득했다. 3. 예수님은 그들에게 오히려 “애통하는 너희가 복이 있다. 왜냐하면 내가 너희를 위로할 자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애통하며 흘린 눈물을 닦아줄 사람이 나다. 내가 너희를 위로해 주겠다.” 4. 이사야 61:1-2에 예언된 그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슬픈 자들을 위로하러 오셨다. 그들의 애통함을 완전히 멈추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 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5. 예수님은 애통하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위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맛볼 수 있는 위로다. 사람들의 위로와는 차원이 다른 위로다. C.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도 있다. 그것은 배부름, 참 만족이다. 1.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여기서 말하는 '의'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죄가 없다고 인정하시는 의를 말한다. 하나님께 의을 인정받는 사람은 죄가 없음을 인정받는 것이다. 2. 이 말씀을 쉽게 이해하려면 당시 예수님을 만나러 온 사람들의 절박한 상황을 이해할 때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의’는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거나 성전에 가서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 의롭게 된다고 믿었다. 3. 그러나 예수님 앞에 모인 사람들은 거의 모두 신체적인 결함이나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다. 레위기 21장을 보면, 맹인, 다리 저는 자, 곱사등이, 난쟁이, 눈에 백막이 있는 자, 옴이나 버짐이 있는 자 등등. 이런 사람들은 성전 제사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들은 부정한 자로 분류되었고,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4.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서 죄를 용서받고 의롭다고 인정받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당했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의에 대한 깊은 목마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을 보시고 예수님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5. 사도행전 3장의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이야기를 보면 더 쉽게 이해된다. 그는 성전 미문 밖에, 가장 성전에 가까운 곳 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다. 그는 성전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성전에는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었다. 신체적 결함 때문이다. 6. 그런데 어느날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를 일으켜 걷게 해준다. 그가 앉은뱅이에서 일어난 후, 그가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성전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일이었다. 사도행전 3:6-8 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7. 앉은뱅이는 걸을 수 있게 되자 성전 안으로 뛰어 들어가면서 하나님을 찬미한다. 앉은뱅이가 그동안 얼마나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갈망했으면, 성한 몸을 얻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성전 안으로 뛰어 들어갔겠나?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는 의에 주리고 목말랐던 사람이다. 8. 당시 예수님 앞에 모인 사람 중에는 이 앉은뱅이와 같은 심정을 가진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체적 약점과 죄, 그리고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는 무능력함 앞에서 절망했다. 그래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다. 9. 그런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너희가 복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선포하셨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상태의 그 사람들을 배부르게 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배부르게 될까? 예수님을 믿을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로 부족함 없이 채워주신다는 말씀이다. 로마서 3:21-22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10.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성경해석으로 인해 영적으로 주리고 목마른 상태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자기 힘과 노력으로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니까 믿음생활이 점점 더 힘들게 느껴진다. Ⅱ. 팔복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야 종교 생활의 무거운 짐을 벗게 된다. A.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팔복은 명령이 아니라 선언이다. 1. 헬라어 원문을 살펴보면 이 부분이 더욱 명확해진다. “복이 있나니”로 번역된 ‘마카리오이’(μακ?ριοι)’는 형용사다. 이것은 ‘복되도다!’ ‘축복받은 자들이다!’라는 동사가 아니다.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다. 2. 이런 전제를 가지고 나머지 부분도 읽어본다. 오늘 마태복음 5:7-9절을 함께 읽는다.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3. 이 말씀도 우리는 흔히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면 하나님도 우리를 긍휼히 여기실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 모인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라. 그들은 병든 자들, 가난한 자들, 소외된 자들이다. 그들 자신이 고통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4. 부자는 가난한 사람의 아픔을 모른다. 건강한 사람은 병든 자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세상이 그들을 정죄하고 멸시할 때, 그들은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버텨왔다. 이것이 바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다. 5. 만약 그들이 바리새인들처럼 교만하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사람들이었다면, 그들은 절대 예수님을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긍휼이 풍성하신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다.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태복음 5:8) 이 말씀도 마찬가지다. 예수님 앞에 모인 사람들은 이미 마음이 청결한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청결함은 종교적 의식이나 외적인 깨끗함이 아니다. 7.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외형적으로는 깨끗해 보였다. 율법을 지키고, 정결 예식을 행하고,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 같다"고 말씀하셨다. 겉은 깨끗해 보이지만 속은 더러운 것으로 가득하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23:27) 8. 반면에 예수님 앞에 모인 사람들은 외형적으로는 부정한 자들이었다. 레위기의 율법에 따르면 그들은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부정한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정직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죄인임을 알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긍휼만을 구하며 예수님을 찾아왔다. 9. 이것이 마음의 청결함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고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고 선포하신다. 왜? 그들의 정직한 마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숨기지 않는 그 마음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10. 예수님 앞에 모인 사람들은 이미 화평케 하는 자들이었다. 화평케 하는 자란 무엇인가? 다툼을 일으키지 않고, 분쟁을 피하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다. 그들은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들이다. 11.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보시고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선포하신다. 왜? 그들의 그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 때문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고,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13. 결국 7-9절도 1-6절과 같은 구조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이미 그런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왔고, 그래서 그들에게 복이 있다고 선포하시는 것이다. B.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의 복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받게 될 영광스러운 고난이다. 1. 오늘 본문 10-12절을 함께 읽는다.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2. 10-12절은 앞의 1-9절과는 구조가 다르다. 1-9절은 이미 그런 상태로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에 대한 선언이었다. 그러나 10-12절은 예수님을 믿은 후에 성도들이 받게 될 핍박에 대한 예언적 말씀이다. 3. 그 증거가 11절에 나온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예수님은 분명히 “나를 인하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받게 될 핍박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4. 예수님은 그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신다. 왜?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받는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로마서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받는 핍박은 일시적이지만, 하늘에서 받을 상은 영원하다. 5. 결국 팔 복에서 말하는 모든 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결과다. 그분을 만났기 때문에 복된 것이고, 그분 안에 거하기 때문에 계속 복된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더 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어주시기 때문이다. Ⅲ. 예수님 한 분이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A. 예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은혜로 부족함 없이 채워주신다. 1. 가난한 자에게는 천국을 주시고, 애통하는 자에게는 위로를 주시고, 온유한 자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는 배부름을 주신다. 긍휼히 여기는 자에게는 긍휼을 베푸시고,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는 하나님을 볼 특권을 주시고, 화평케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주신다. 예수님 한 분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신다. 2. 골로새서 2:9-10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해진 사람들이다. 내 힘으로 더 이상 무엇을 더할 필요가 없다. 3. 적지 않은 성도들이 “나는 아직도 부족해”라고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한다. 더 열심히 해야 하고, 더 헌신해야 하고, 더 기도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는 내 안에서 이미 충만하다”고 선포하신다. 4.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결코 부족함이 없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이 모든 것을 채우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부족하게 생각되는 것은 내가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노력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이미 완성된 복을 누리는 것이다. 5.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19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신다. 6.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예수님 안에 있다. 구원도, 의도, 평안도, 기쁨도, 소망도 모두 예수님 안에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 안에 거하며 풍성함을 누리는 것이다. B. 예수님은 종교의 무거운 짐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 1.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2. 예수님은 지금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여러분들을 초청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죄로 인한 무거운 짐, 종교적 의무의 짐,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가득한 지친 여러분을 초청하신다. 3.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웠다. 마태복음 23: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은 율법에 수많은 규정을 더해 사람들을 옭아맸다. 4.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벗겨주시고 쉼을 주신다. 어떻게? 예수님이 우리 대신 모든 무거운 짐을 지셨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저주와 율법의 요구를 다 담당하셨기 때문이다. 5. 갈라디아서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 우리는 더 이상 율법과 종교의 종이 아니다. 6. 지금도 많은 성도들이 여전히 무거운 종교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 “더 해야 한다,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고 선포하셨는데 우리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7. 여러분의 믿음 생활이 점점 더 무겁고 힘들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믿음 생활이 아니다. C.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는 믿음의 고백이 우리의 인생을 바꾼다. 1.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7-8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2. 바울에게는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했다. 바울은 자기가 자랑스럽게 여기던 모든 것 - 혈통, 학벌, 지위, 명예 - 을 배설물처럼 버렸다. 왜?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면 모든 것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3. 우리도 바울 같은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내게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더 이상 세상에 있는 것들로 나를 채우려 하지 말라.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라. 4. 우리가 진심으로 “내게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신앙생활은 종교적 의무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바뀐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하게 된다.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하고 싶다’로 바뀐다. 5. 오늘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산에 올라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난 후 산을 내려올 때는 어떤 상태였을까? 올라갈 때보나 더 무거운 짐을 지고 내려왔을까? 아니면 무거운 짐을 예수님 앞에 다 내려놓고 가벼운 몸으로 내려왔을까? 6. 산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만난 그들의 발걸음은 올라갈 때와는 달리 가벼워졌고, 그들의 얼굴에는 소망으로 빛이 났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던 그들에게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했다. D.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팔 복의 참된 의미를 살펴보았다. 1. 오늘 이 자리에 가난한 심령으로, 애통하는 마음으로,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며 오신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은 바로 당신을 향해 “복이 있다”고 선포하십니다. 당신에게도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2. 예수님은 우리의 천국이시고, 위로이시고, 의이시고, 평강이십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노력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이미 완성된 복을 믿고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귀한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는 진리를 깨닫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그동안 팔복을 율법처럼 오해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복된 자임을 믿게 하시고, 그 복을 날마다 누리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