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복음 5:13-16 제목: 성도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 25. 10. 12 향기나무성서침례교회 주일예배 서 병 안 목사 중심 사상: 성도는 부패한 세상에 꼭 필요한 소금이며, 빛을 비추는 등잔 같은 존귀한 존재다. 1.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추석 명절 잘 보내셨나요? 이번 추석 명절은 긴 연휴 기간으로 인해 비교적 여유있게 보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분주했던 일상을 잠시 멈추고 여유로운 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모든 성도님이 건강한 모습으로 교회에서 다시 뵐 수 있어서 참 감사하고 좋습니다. 2. 우리는 지난 주일에 예수님을 만나러 찾아온 사람들을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지난주 설교 제목이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였는데 구원받은 성도라면 반드시 마음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3. 가끔 설교를 준비하다 보면 아이러니 한 부분이 있다. 열심히 설교를 준비하다 보면 이번 설교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꼭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설교가 있다. 그런데 그런 설교일수록 성도님들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많이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를 본다. 4. 지난주 설교가 그런 경우입니다. 지난주 설교를 제가 단톡방에 올려놓았는데 아직 듣지 못하신 분들은 꼭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홈페이지나 유투브에서 보셔도 됩니다. 5. 오늘 설교는 지난주에 이어지는 내용인데 구원받은 성도들이 세상에 속해 살면서 어떤 영향력을 미치며 살아가야 하는지, 성도로서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하여 소금과 빛, 두 가지 사물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6. 로마 시대 당시 소금은 ‘하얀 황금’이라 불릴 정도로 귀했습니다.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라 화폐처럼 통용될 정도로 중요한 물질이었습니다. 빛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이야 도시에서는 밤이 되어도 가로등이나 네온사인으로 인해 어두운 곳이 없지만 빛이 없는 옛날의 밤은 위험과 두려움을 의미했습니다. 7. 따라서 빛은 어둔 길을 인도하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생명의 상징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처럼 일상적이지만 핵심적인 두 가지 사물을 통해, 구원받은 성도인 우리가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선언하십니다. 8. 오늘 말씀을 통해 성도인 우리가 세상에서 얼마나 귀하고 필요한 존재인지, 그리고 성도로서 우리의 일상이 세상에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지를 깨닫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Ⅰ. 구원받은 성도는 세상에 꼭 필요한 소금이다. (13절) A. 예수님은 우리의 정체성을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단언하신다. 이는 미래의 가능성이나 어떤 제안이 아닌, 확정적인 선언이다. 1. 그러니까 너희는 장차 소금이 될 가능성이 있다. 아니다. 나는 너희가 세상의 소금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것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성도는 이미 세상의 소금이라는 정체성을 부여받은 것이다. (마태복음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2. 소금은 세상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다.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소금같이 귀한 존재로 보고 계신다. 3. 우리를 향해 소금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면 고대 사회에서 소금의 가치를 이해해야 한다. 요즘 우리는 소금을 마트에서 천 원이면 살 수 있는 흔한 조미료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의 소금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가치를 지닌 중요한 물품이다. 4. 로마 제국에서는 병사들의 봉급을 소금으로 지급했다. 영어 로 봉급쟁이를 ‘샐러리맨’이라고 한다. 이때 ‘샐러리’(Salary)라는 단어가 바로 소금을 뜻하는 라틴어 ‘살’(Sal)에서 유래했다. 샐러리가 봉급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소금은 곧 돈이었고, 부의 척도였다. 5. 또한 냉장고가 없던 옛날에는 소금이 음식을 보존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고기와 생선을 소금에 절여 부패를 막았다. 그러니까 소금이 없다는 것은 곧 기근과 죽음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금은 생명을 연장시키는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다. 6. 그리고 또 한 가지 소금의 역할이 있는데 바로 맛을 내는 역할이다. 음식은 적당한 간이 맞아야 맛이 난다.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음식은 맛이 없다. 그래서 소금은 맛을 내는 역할을 한다. 소금의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은 부패를 막는 것과 맛을 내는 것이다. B. 그러면 예수님이 구원받은 성도를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의미는 무엇일까? 1. 소금의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이 부패를 막는 것과 맛을 내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성도가 세상에서 맡은 기능 중 한 가지가 부패 방지 기능이다. 성도는 세상의 악과 죄가 더 확산되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한다. 2. 소수의 구원받은 성도가 세상의 부패를 막는다? 불가능할 것 같지만 실제로 성도는 세상의 부패를 막는 역할을 잘 감당한다. 바닷물이 썩지 않는 주된 이유는 바로 바닷물에 녹아 있는 높은 농도의 소금(염분) 덕분이다. 바닷물의 평균 염분 농도는 3.5%인데 이 옅은 염분의 농도가 미생물이 번식하며 부패하지 못하게 막는다고 한다. 3. 세상에 구원받은 성도가 소수이기는 하지만 그 성도들로 인해 세상이 죄와 악으로 오염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정직하게 살고, 죄를 멀리하며 선을 행하는 소수의 성도로 인해 세상이 심하게 부패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를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4. 그리고 성도들이 세상 곳곳에서 선한 일을 통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맛을 내는 기능을 한다. 그래도 아직 세상이 따뜻하고 살만하다고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세상 곳곳에서 맛을 내는 소금 역할을 하는 성도들 덕분이다, 5. 나는 우리 향기나무교회 성도님들이 계신 곳이면 그곳이 어느 곳이라도 우리 향기나무교회 성도님들 때문에 그곳이 사람이 살만한 곳이 되고 생기가 넘치게 될 것으로 믿는다. 여러분들이 어디에 있든지 그곳은 사람이 살만한 곳이 된다. C. 세상의 소금 역할을 맡은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우리가 가진 소금의 정체성인 짠맛을 잃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1. 예수님은 우리에게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라고 경고하신다. 소금이 음식의 부패를 막는 것처럼, 성도는 이 세상의 죄와 악의 풍조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흐름을 거스르는 경건한 삶으로 세상의 타락을 막아서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2. 우리는 소금으로서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함이 있어야 한다. 소금은 음식에 녹아들어 맛을 내지만 결코 음식 그 자체가 되지 않는다. 자신만의 짠맛을 유지하며 음식의 맛을 변화시킵니다. 이처럼 성도는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동화되지 않는다. 성도는 구별된 삶을 통해 세상의 소금으로서의 독특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3. 성도가 소금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게 되면 어떤 모습일까? 예수님은 이렇게 표현하신다. 마태복음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4. 이런 사람들은 주일에 성경책을 들고 교회에 갈 때는 성도의 모습을 보이지만 세상에서는 전혀 존재감을 찾을 수 없게 된다. 성경책이 손에서 떠나는 순간 구원받은 성도인지 그냥 믿지 않는 세상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다. 말도 세상 사람과 구별이 안된다. 행동도 세상 사람과 똑같다. 5. 세상 사람들에게 비아냥거림을 당하며 산다. “저 사람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보다도 못해, 입만 열면 거짓말하고, 다른 사람 흉보고 욕하고.. 저럴거면 교회는 무엇 하려고 다니는지 몰라.” 이런 것이 죽은 믿음을 가진 성도의 모습이다. 6. 겉으로는 신실한 성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면에는 영생이 없는 사람, 세상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런 사람은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 성도로서 매우 부끄러운 모습이다. D. 성도가 세상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기 스스로 자신을 ‘싸구려 소금’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1. 여러분은 혹시 스스로를 ‘값싼 소금’처럼 여기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세상의 기준에 맞춰 나의 가치를 평가하며 위축되어 있지는 않는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보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2. 우리는 세상에 맛을 더하는 하나님 나라의 ‘명품 소금’이다. 갓 만든 천일염에는 ‘간수’가 있어서 쓰고 떫은 맛을 낸다. 그래서 소금을 오랜 시간 가만히 쌓아두어서 간수가 다 빠져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간수가 다 빠지고 나면 부드러운 짠맛과 함께 단맛이 나는 최고의 명품 소금이 된다. 3.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 여정이 바로 이 간수를 빼는 과정이다. 하나님은 나에게서 ‘쓴맛’을 빼기 원하신다. 우리의 혈기, 교만, 이기심, 남을 판단하는 날카로움, 쉽게 포기하는 조급함이라는 쓴 간수를 빼내기 위해, 때로 여러분을 고난의 과정에, 인내를 통과하게 하신다. 4. 그 시간은 아프고 더디다. 그러나 그 연단의 시간을 통과한 성도는 마침내 본성의 쓴맛이 빠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부드럽고 깊은 ‘감칠맛’을 내는 존재가 된다. 그런 사람의 말에는 사람을 살리는 위로가 있고, 표정 하나에 주변을 평안하게 하는 온유함이 있다. 바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명품 소금’의 모습이다. 5. ‘명품 소금’은 오랜 시간 쓴맛을 내는 ‘간수’를 빼내어 깊은 감칠맛을 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있는 위선, 교만, 이기심, 세상과 타협하는 마음이라는 영적 간수를 성령의 능력으로 빼내야 한다. 이 쓴맛을 빼낼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부패를 막고 생명을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맛을 내는 명품 소금이 된다. 6.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소금 본연의 맛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한다. 성도로서의 거룩함이 훼손되지 않도록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함으로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 Ⅱ. 구원받은 성도는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세상의 빛이다. (14절) A.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숨기지 말고 드러내야 한다. (마태복음 5:14-15)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 예수님은 우리의 정체성을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뒤, 이어서 우리의 사명을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포하셨다. 소금이 부패를 막는 방어적 역할이라면, 빛은 어둠을 몰아내는 능동적 역할을 강조한다. 2. 요한복음 8:12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고 오늘 마태복음에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포하셨다. 우리 안에 세상의 빛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했으니 우리도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3. 우리는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달하는 등잔 같은 존재다. 빛이 비치면 어둠 속에 감추어졌던 것들이 드러나듯,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세상의 죄악과 거짓, 불의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4. 세상 사람들은 밝은 빛 때문에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여 어둠을 좋아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의 역할을 해야 한다. 5. 성도에게는 죄의 길을 가며 어둠 속에서 갈 곳을 잃고 헤매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세상의 빛이요, 생명이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사명이 주어졌다. 우리가 그 사명을 선택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우리의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를 모두 보게 되어있다. B. 성도의 삶은 성도 스스로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감추어지지 않는다. 1. 예수님은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신다. 빛은 속성상 숨겨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도는 참 빛 예수님을 마음 속에 모시고 있으니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가 없다. 2.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라고 말씀하신다. 등경은 등잔대를 말한다. 등경의 위치는 어디서나 빛을 가장 잘 볼 수 있게 하는 집 안에서 가장 높은 곳, 빛이 가장 멀리 퍼져나갈 수 있는 위치에 둔다. 3. 구원받은 성도 중 일부는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등불을 켠 목적 자체를 부정하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마찬가지로 구원의 빛을 받았음에도 세상이 두려워, 혹은 부끄러워 그 빛을 감추는 것은 구원받은 자의 목적을 스스로 부정하는 영적 어리석음이다. 4. 예수님은 구원받은 성도인 우리에게 항상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라고 명령하신다. 등불이 집 안의 특정 사람이나 구석진 곳만 비추지 않고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추는 것처럼 우리 빛 또한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와 관계가 좋은 사람에게만 비추는 편협한 빛이 되어서는 안된다. C. 구원받은 성도는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과 같이 필수적인 존재다 1. 우리가 세상 빛의 역할을 잘 감당하려면 성경이 말하는 어둠의 실체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어둠은 단순히 빛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2. 2025년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조명으로 가득하다. 네온사인이 밤을 밝히고, 가로등과 스마트폰이 우리의 얼굴을 비춘다. 그러나 영적인 시각으로 볼 때 세상은 지금 가장 짙은 어둠에 빠져있다. 3. 어둠 가운데 있는 세상을 위해 성도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빛은 어둠을 물리친다. 아무리 짙은 어둠이라도 작은 빛 하나면 충분히 밝아진다.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다. 우리가 진리로 살아갈 때, 우리 주변의 영적 어둠은 물러갈 수밖에 없다. 4. 빛은 길을 보여준다.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편 119:105)라고 고백한다.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은 사람들에게 우리는 하나님 말씀으로 올바른 길을 제시해야 한다. 5. 성도인 우리는 빛의 자녀로서의 사명을 깨달아야 한다. 에베소서 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명령한다. 빌립보서 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라”고 말씀한다. 6. 우리는 성도인 우리 존재 자체가 세상에 희망이 됨을 믿어야 한다. 성도는 어두운 이 세상에, 진리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어디로 가야 할지 생명의 길을 비추는 사람들이다. 성도는 존재 자체가 어둠 속을 방황하는 세상에게 유일한 등대요 희망이다. Ⅲ.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부름받은 사람이다. (16절) A. 주님은 우리가 왜 소금과 빛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 궁극적인 목적을 마태복음 5:16절에서 명확히 밝히신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 우리의 정체성과 사명의 귀결점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다. 어떻게?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2. 여기서 말하는 ‘착한’(칼로스, kalos)은 ‘아름다운, 선한, 탁월한, 매력적인’이라는 의미가 있다. 즉, 세상의 방식과는 너무나 달라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삶의 방식이다. 3. 성도의 착한 행실은 교회에서만이 아니다. 직장에서의 성실함, 사업에서의 정직함, 가정에서의 희생, 이웃을 향한 섬김, 약자를 향한 긍휼, 환경을 보호하는 작은 실천 등, 삶 의 모든 영역에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4. 세상은 우리의 말이 아닌, 이러한 구별된 삶의 행실을 주목하여 보고 있다.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벧전 2:12)고 명령했다. B. 우리가 선을 행하는 목적은 내가 아닌 하나님 아버지를 높이는 것이 목표이어야 한다. 1. 그렇게 하려면 자기 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우리가 선을 행할 때 그 목적이 ‘나의 의’를 드러내는 것으로 변질될 때다. “내가 이만큼 헌신했다”, “내가 이렇게 착하게 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선행은 바리새인의 누룩과 같다. 2. 예수님은 마태복음 6:1-2에서 이렇게 경고하셨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3. 그렇게 되려면 우리는 수시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삶을 훈련해야 한다. 누군가 나의 삶을 칭찬할 때,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C. 결론 1. 오늘 말씀을 정리한다. 첫째, 우리는 세상에 꼭 필요한 소금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의 생명 값을 치르고 사신 존귀한 존재다. 세상의 부패를 막고 맛을 내는, 이 시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이다. 둘째, 우리는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다. 우리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등경이다. 두려움과 안일함의 상자를 깨고 나와, 담대하게 빛을 비추어야 한다. 셋째,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우리 자신이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이것이 우리가 소금과 빛으로 사는 최종 목적이다. 2. 성도 여러분, 오늘 설교를 잘 들으셨나요? 더 이상 ‘너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세상의 거짓말에 속지 말라. 더 이상 ‘내가 무슨 영향력이 있겠어’라며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존귀한 소금이요 빛인 성도다! 3. 사람들이 모두 불평할 때, 여러분만큼은 감사의 말을 해야 한다. 그것이 소금의 역할이다. 가정에서 살다보면 혈기가 올라올 때, 그때 한 번 더 참고 온유하게 대하십시오. 그것이 빛의 모습이다. 이웃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못 본 척하지 말고 손 내밀어 도와주십시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착한 행실이다. 4. 세상은 지금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세상은 우리의 말이 아닌 우리의 삶을 본다. 우리의 일상이 전도지다. 맛을 잃은 소금은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라는 주님의 경고를 기억하라. 상자 속에 감춘 빛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주님의 책망을 기억하라. 5. 여러분은 세상의 소금이다! 여러분은 세상의 빛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룩한 성도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이 계신 그곳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담대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