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중요성
작성자 : pts | 작성날짜 : 2023-07-02 | 수정자 : pts | 수정날짜 : 2023-07-02

본문: 고린도전서15:12-20, 35-58 제목: 부활의 중요성 23. 4. 9 향기나무교회 주일오전 예배 서 병 안 목사 중심 주제: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에게 소망이 된다.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이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1. 오늘은 전 세계 기독교계가 정한 부활절이다. 부활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세상 죄인들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다가 삼 일이 지난 후 다시 살아나신 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2. 신앙적인 면에서 볼 때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 탄생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의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대속의 죽음과 다시 사심이 없으면 구원의 과정이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3. 그렇게 볼 때 부활에 대한 소망은 구원받은 성도만이 가질 수 있는 거룩한 소망이다. 아무리 좋고 위대한 일이라 해도 그것이 나와 상관이 없으면 내게 무슨 의미가 될까? 4. 예수님의 부활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2,000년 전의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하심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내게도 일어나기를 소망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이 여러분을 위한 부활이요 나를 위한 부활이기 때문이다. 5. 바울은 말하기를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예수님도 다시 살지 못했을 것이고,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일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 되며 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4.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부활절에 삶은 계란을 먹고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담겨있는 참다운 의미와 중요성을 알고 기념해야 한다. 5. 예수님의 부활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예수님의 부활이 왜 중요한지 정확하게 듣고 배워서 알아야 한다.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왜 중요한지 그 이유를 살펴보면서 복을 나눈다. 오늘 설교 제목은 ‘부활의 중요성’이다. 부활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Ⅰ. 예수님의 부활이 기독교 신앙의 시작이요 완성이기 때문이다. A. 복음의 핵심은 죄인을 위한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과 죽음의 권세를 이긴 예수님의 부활이다. 1. 오늘 우리가 읽은 고린도전서15장1-4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2. 복음은 죽은 자들을 살리는 복된 소식이다. 우리가 듣고 믿은 복음의 내용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관한 소식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나를 위한 대속의 죽음임을 믿음으로 구원이 시작되었고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천국 삶을 살 수 있는 소망을 주셨다. 3.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시점은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사실을 믿는 그 순간이 된다. B. 기독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시작하고 나중에 예수님처럼 부활함으로 완성된다. 1.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우리 신앙의 시작점이 되는 것이고 우리가 예수님처럼 영원한 천국 삶을 살 수 있는 몸의 부활로 믿음이 완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기독교의 시작이요 마침이 된다. 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는데 만약에 부활하심이 없이 죽는 것으로 끝났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14절부터 19절까지 함께 소리를 맞춰서 읽어본다. 3.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 사역 중에 스스로 자신의 부활에 대하여 자주 언급하셨다. 예수님은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나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마12:40)고 말씀하셨다. 4. 바울은 고린도전서15:3-4절에서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말하고 있는데 구약성경에 기록된 부분을 살펴본다. (시편16:10)“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호세아6:2)“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5. 지옥에 갈 죄인이 모든 죄 용서받고 구원받음에 있어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죽으심은 생략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십자가 죽음만으로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니다. 여러분들이 부활을 통해 신령한 몸을 입는 과정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6.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는데 부활을 통해 신령한 몸을 입지 못하면 아직 구원이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늙고 병들어서 100년 정도가 한계인 현재의 몸으로는 영원한 천국에서 살 수 없다. 신령한 몸을 입어야만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인 우리에게 부활은 기독교 신앙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퍼즐과 같다. 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개인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사흘 만에 부활하신 사실을 분명히 듣고 믿어서 구원받았습니다. 맞습니까? 우리는 장차 예수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을 분명히 믿어야 한다. 아멘~~~!!! 그때 살아있든지 아니면 죽은 상태에 있을지라도 모두 가능하다. 부활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 두 번째.. Ⅱ.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 권세를 이긴 위대한 승리이기 때문이다. A.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지 부활이 어디 있고, 천국이 어디 있느냐며 부활을 부정한다. 1.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같은 생각을 했다.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며 죽은 자의 부활은 없다고 말한다. 12절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2. 그 말을 전해들은 바울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써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만일 죽은 사람이 부활하는 것이 없다면 예수님도 다시 살지 못했을 것이고 예수님이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구원의 복음도 헛것이고 내 믿음도 헛된 것이요, 자신은 거짓말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3. 바울은 계속해서 말한다. 만일 죽은 사람이 다시 사는 일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지 않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 죽음을 통한 영원한 속죄도 거짓이며 우리는 모두 여전히 죄 가운데 그대로 있을 것이다. 4. 만약에 모든 인생이 죽음으로 끝이 난다면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이 오직 이생뿐이라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실제로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기록하고 있고 우리도 그렇게 믿는다. B.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인해 구원받은 성도는 유신의 죽음을 이긴 위대한 승리, 즉 부활을 보장받게 되었다. 1. 내가 ‘부활은 위대한 승리’라고 말씀드렸다. 왜 부활이 위대한 승리가 될까?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를 이긴 최 초의 사람이요, 친히 살아있는 증거가 되셨다.(12-19절) 2. 사람들이 옛날부터 죽음을 가장 무서워했다.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이 나기 때문이다. 권세도 끝이 나고 명예도 끝이 난다. 사랑도 끝이 난다. 모든 것이 끝난다. 그래서 죽음이 두려운 것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똑똑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모두 공평하다. 3. 세상의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그 무서운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은 기적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위대한 승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4. 우리가 부활절에 예수님의 부활을 함께 기뻐하며 함께 기념하고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성경의 약속으로 인해 예수님 안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위대한 승리, 즉 부활을 보장받게 된 것이다. 42-44절을 보라.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부활의 몸은 영원히 썩지 않는 신령한 몸이다. 5.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위대한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 왜? 사망의 권세를 영원히 물리쳤기 때문이다. 55-57절을 한 목소리로 읽는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6.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죽음이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의 소망 가운데 있으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 부활의 소망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이 사망을 열심히 멸하신 것이다. (이사야25:8)“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C. 부활에는 두 종류의 부활이 있다. 세상의 마지막 때가 되면 그 둘을 완벽하게 구별할 수 있게 된다. 1. 하나는 예수님이 공중 강림하실 때 있을 구원받은 성도의 부활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흰 보좌 심판 때 부활하게 될, 불신자들의 부활이다. 먼저 구원받은 성도의 부활을 살펴본다. 데살로니가전서 4:16-18을 펴본다.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2. 장차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이 공중에 강림하실 때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성도들이 먼저 영생을 위한 새 몸을 입고 부활한다. 그리고 아직 세상에 살아있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육신이 아닌 영원한 천국 삶을 살기에 합당한 새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으로 올라간다. 그것을 성도의 부활이라고 한다. 3. 두 번째 부활은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죄인들에 대한 심판이다. 요한계시록 20:11-15절을 함께 본다.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4 .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죽어서 땅에 묻혀있든지 아니면 바다에 빠져 죽었든지 모두 지옥에서 영원히 거할 새 몸으로 부활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가 세상에서 있을 때 지은 죄에 대하여 심판을 받는다. 이것을 죄인의 부활, 즉 죄에 대한 부활 심판이다. 5. 이 두 종류의 부활 중에 장차 우리에게 일어날 부활은 정말 감사하게도 첫 번째 부활, 구원받은 성도의 부활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지금은 그저 상상할 뿐이니까 그다지 깊고 크게 와닿지 않겠지만 우리가 실제 부활을 통해 신령한 몸을 입게 되면 큰 감동이 있을 것이다. 세 번째, 부활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Ⅲ. 예수님의 부활은 영원한 신비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A.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신비 중의 신비요, 위대한 신비라고 말할 수 있다. 1. 내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신비 중의 신비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단회적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모든 성도에게 일어날 일이기 때문이다. 2. 예수님께서는 장사 된 후 삼 일이 지나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다시 살아나셨다. 만약에 예수님의 부활이 오직 예수님께만 일어난 일이라면 그것은 역사에 기적으로 기록될만한 한 사건일 뿐이다. 3.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뿐 아니라 예수 안에서 구원받는 모든 성도에게 일어날 것이니 그것은 기적일 뿐 아니라 영원한 신비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다. 오늘 본문 20-22절을 함께 읽는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부활)을 얻으리라” 4.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가 기뻐하고 함께 기념하고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영원한 생명을 가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첫 번째 열매시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가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이라는 약속을 하나님에게 받은 것이다. 5. 42-45절을 보라. 부활을 이렇게 표현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6.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영원히 썩지 않는 신령한 몸이다. 썩을 것으로 심어서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어서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니 이것이 신비 중의 신비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아니면 무엇으로 가능하겠나? 7. 현재 여러분의 몸이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사고로 다쳐서 몸의 기능이 망가지기도 하고 병들어서 고장나기도 한다. 늙어서 죽기도 한다. 그랬던 몸이 영원히 살아도 고장이 없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것처럼, 장차 때가 되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신령하고 영광스러운 새 몸을 입고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B. 예수님은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받은 성도는 영원한 생명의 부활을 보장받았다. 1. 오늘 본문 54-55절을 함께 읽는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는 죽음을 이기는 완전하고 영원한 승리가 예정되어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뿐 아니라 믿는 우리 성도들에게 죽음으로부터의 승리를 약속하셨다. 2. 여기 나오는 이 말씀은 바울이 이사야서와 호세아서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이사야25:8)“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호세아13:14)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3.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똑똑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모두 공평하다. 세상의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의 길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그 무서운 사망의 권세를 물리치고 승리하신 것이다. 4.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위대한 승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55-57절을 소리 맞춰서 읽는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에 대한 완전하고 영원한 승리를 나타낸다. 사망을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 하늘같이 높은 권세를 가진 사람도 죽고 나면 권세도 끝난다. 아무리 많은 재물도 의미가 없어진다. 뛰어난 외모도, 세상의 즐거움조차도 의미가 없어진다. 6. 우리가 나중에 부활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그때의 영광과 기쁨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세상에서 누리던 부귀영화의 의미가 없어진다. 세상에서는 돈이 최고이고 권력이 최고이고 미모가 최고이지만 장차 주님 앞에 서게 되면 그 모든 것의 가치는 완전 제로가 된다. 이것은 마치 아무리 밝은 전기 불이라 할지라도 햇빛 아래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과 같다. 전혀 보이지 않는다. 7.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영원한 신비요 하나님의 능력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 부활의 능력과 신비 안에 있게 된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과 신비는 오늘 하루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은 물론, 장차 우리가 갈 천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C. 나는 우리가 항상 마음속에 부활의 신비와 소망으로 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1. 요즘같이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활의 소망이다. 세상의 돌아가는 것을 보면 혼란스럽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다 보면 나까지 어떻게 될까 두려운 마음이 생긴고 불안해진다. 건강에 대한 염려, 안전에 대한 염려, 장래 일에 대한 두려움 등이 우리를 매우 혼란스럽게 만든다. 2. 그러나 내가 처음 말씀드린 대로 가장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세상을 보고 실망하지 말고 구원의 방주가 되시는 예수님께 한 발 더 가까이 감으로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바란다. 3. 오늘 부활절을 맞아 예수님 부활의 중요성과 성도인 우리에게 부활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았다. 부활의 중요성에 대한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보았다. 1)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시작이요 완성이다. 2)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 권세를 이긴 위대한 승리다. 3) 예수님의 부활은 영원한 신비요 하나님의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