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아름다운 삶
작성자 : pts | 작성날짜 : 2023-07-24 | 수정자 : pts | 수정날짜 : 2023-07-24

본문: 창세기3:1-24 제목: 성도의 아름다운 삶 19. 5. 19 향기나무성서침례교회 주일예배 서 병 안 목사 중심 사상: 성도가 자기 위치를 지킬 때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설교 목적: 성도들에게 성도로서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가르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도록 돕기 위함 1. 오늘은 에덴동산에서 벌어진 일들을 통해 성도로서 가장 아름다운 삶의 모습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인 아담과 하와의 행복한 삶을 위해 만드신 최고의 장소이다. ‘에덴’이란 이름에는 ‘기쁨’, ‘즐거움’, ‘희락’과 같은 뜻이 담겨있다. 2. 에덴동산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다. 에덴동산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최고로 아름다운 피조물인 아담과 하와가 있었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기쁨의 동산이요 행복의 동산이다. 그곳은 죄도 없고, 전쟁도 없고, 미움이나 다툼도 없고, 오직 기쁨과 희락과 참 만족만 있는 아름다운 낙원이다. 3. 이 아름다운 낙원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죄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모든 권한을 주어 그곳을 다스리게 하셨으며 그곳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 살도록 허락하신다. 단 한 가지 금기 사항을 말씀하셨 는데 그것은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않는 것이다. 4. 아담과 하와가 처음에는 하나님의 명령을 잘 기억하고 지키고 살았는데 어느 날 뱀의 유혹에 하와가 넘어가서 선악 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게 된다. 그리고 아담에게도 그 열매를 먹게 함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의 길로 가게 된다. 5. 방금 전 읽은 창세기 3장에는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 열매를 먹고 타락하는 과정이 자세히 나온다. 아담과 하와의 모습은 선악과 열매를 먹기 전과 먹은 후가 전혀 달랐다. 먹기 전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 실만큼 아름다웠지만 먹은 후에는 고통스런 죄인의 모습으로 변한다. 오늘은 창세기 3장을 통해 ‘성도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에 대하여 생각해보면서 복을 나눈다. Ⅰ. 성도는 하나님의 정하신 질서와 명령을 존중하고 순종할 때가 가장 아름답다. 1.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능력과 방법으로 세상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하셨고 세상을 다스리는 질서를 통해 세상을 통제하신다. 세상을 창조할 때의 모습이 절서정연하게 하셨지만 세상의 운행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특별한 질서 안에서 이루어 가신다. 2. 창세기1:27-3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창조의 모든 과정을 마치신 후 크게 기뻐하신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 라...” 3.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존중하고 순종할 때 모든 인생이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 빛과 어둠은 섞일 수 없 고 섞여서도 안된다. 세상의 질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바다와 땅의 경계가 무너지면 세상에는 큰 혼란이 온다. 자연이든지 사람들이든지 질서정연한 모습은 보기에도 매우 아름답다. 4. 자연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도 세상 만물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 안에서 자기 위치를 잘 지키고 있기 때문이 다. 태양은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위치에 있고 지구도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위치에 있기 때문에 아침과 저 녁,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아름다운 사계절이 있는 것이다. 5. 태양이 원래 정해진 위치에서 보다 조금만 더 가까이 있어도 우리는 모두 불에 타서 죽을 것이다. 반대로 조금 더 멀리 있다면 우리는 추워서 살지 못할 것이다. 일 년 주기가 200일되었다가 500일 되거나 한다면 큰 혼란 이 올 것이다. 이 자연이 아름다운 이유는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대로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온 우주는 하나님께서 정교한 계산과 법칙에 의해 정해놓으신 위치에서 정확하게 한걸음도 바뀌지 않고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고 있다. 6. 우주만물 뿐 아니라 사람들도 정해진 자기 위치가 있다. 대통령이 있어야할 자리가 있고 군인이 있어야할 자리 가 있다. 의사가 있어야할 자리가 있고 법관이 있어야할 자리가 있다. 죄인들이 있어야할 곳은 감옥이다. 죄인 이 국회에 가 있거나 군인이 국회에 가 있으면 국가적,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온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합당한 위치가 있고 그 위치를 지킬 때가 가장 아름답다. 7.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은 어느 자리에 있어야 할까? 성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자리에 있을 때가 가장 아름 답다. 기도 자리에 있을 때도 성도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섬기는 자리, 겸손하고 낮은 자리가 성도에게 어울리 는 아름다운 자리다. 8. 아름다움이란 단어는 원래 순 우리말이다. 아름이란 단어는 나 또는 개인이란 의미가 있다. 즉 자기 다운 모습 이 아름다움인 것이다. 학생은 학생답게 살 때가 아름답고 엄마는 엄마의 위치를 지킬 때가 아름답다. 사람이 자기 정체성을 유지할 때가 가장 아름답듯이 성도는 성도의 위치에 있을 때 아름다운 것이다. 성도가 있어야할 위치는 예배자리, 기도하는 자리, 겸손하고 낮은 자리다. 9. 오늘 우리가 야외 공원에 나와서도 예배의 자리를 마련한 것은 이 예배 자리가 성도인 우리가 있어야할 자리이 기 때문이다. 성도가 성도다움을 지켜나갈 때 그 모습은 하나님의 정한 질서에 순종하는 모습이며 우리 하나님 께서 보시고 매우 기뻐하실만한 아름다운 모습이다. 10.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은 우리에게도 좋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리에 서 있을 때가 가장 평안 하고 아름답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삶의 기준으로 세우고 따라가라. 그 모습이 성도인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될 것이다. Ⅱ. 성도가 하나님의 권위와 질서를 무시하면 삶이 무너진다. 1. 하나님의 권위와 질서가 깨진 에덴동산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온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으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버리고 만다. 뱀은 하와에게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된다고 유혹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니 이제부터 자기들이 하나님과 동급이 되었다는 의 미가 된다. 2. 선악과는 원래 유혹의 도구가 아닌 하나님과 사람의 경계를 구분하는 도구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 졌지만 하나님과 사람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하나님은 조물주이시고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지 못하도록 막음으로서 하나님은 조물주이시며 사람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각성 하게 하신다. 3.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조물주인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을 경계를 구분하는 선이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열매를 먹었다는 말은 그들이 하나님과 자기들을 구분하고 있는 권위와 질서를 무시함으로 더 이상 하나님의 권위아래 있지 않겠다는 독립선언이요 반역의 선언이다. 군대 하극상과 같다. 4.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나? 그들이 선악과 열매를 따먹었 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지 않았고 죽지도 않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조물주인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 사이의 관계가 깨어졌다. 5.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권위가 무너졌고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위계질서가 깨진 것이다. 질서가 깨어지니 균형 이 무너졌고 균형이 무너지니 행복이 깨어졌다. 질서와 균형이 무너지면 사람은 불안해진다. 그동안 하나님께 서 정하신 질서 안에서 누리던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졌다. 6. 뿐만 아니라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수치심이 생겼고 죄로 인한 두려움이 나타났다. 이런 부정적인 것들은 아담과 하와가 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어겼을 때 에덴동산에 나타난 결과들이다. 하나님의 세우신 권위가 깨어지니까 질서가 무너지고, 질서가 무너지니까 삶의 균형이 깨지고, 균형이 깨지니 까 행복과 즐거움이 사라졌다. 7. 하나님의 권위와 질서가 깨진 교회나 가정이나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생도 가정도 모두 하나님께서 직접 설계 하시고 창조하신 피조물이다. 모든 작품에는 설계자가 적절하게 힘의 균형을 분배하여 질서 가운데 유지되어야 안전하고 오래간다. 예술가의 작품을 다른 사람이 보기에 안 좋다고 여기저기 고치거나 옮긴다면 힘의 균형이 깨어져서 무너지거나 뒤틀린다. 8. 가정만 하더라도 아버지가 맨 꼭대기에서 딱 중심을 잡고 있고 어머니가 그 뒤를 받쳐주고 자녀들이 부모님의 권위 아래서 지낼 때가 가장 행복하다.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다. 안정적이다. 질서가 잡혀있기 때문에 웬만한 어려움으로는 가정이 흔들리지 않는다. 9. 행복한 가정을 깨뜨리고 질서가 무너지게 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가장의 권위를 무시하고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면 된다. 아내는 남편 무시하고, 자식은 부모를 무시하면 된다. 그러면 순식간에 질서가 무너지고 행복도 같이 깨지게 될 것이다. 10.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가 있다. 교회의 최고 권위는 성경이다. 교회 안에서나 믿음이나 교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잣대는 성경이다. 목사 개인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교회의 가치관을 결정하지 못한다. 교회 안에는 질서가 있어야한다. 성도는 아무리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되더라도 교회 안에서의 문제는 하나 님께서 세우신 담임목사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권위 때문이다. 11. 가끔 교회 안에 문제들이 생기는 것은 이런 권위와 질서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권위와 질서가 유지될 때 그 교회는 평안하다. 목사가 성도보다 잘나서가 아니다. 성도가 못나서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목사에게 위임하신 권위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리고 목사도 하나님의 권위, 성경의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 Ⅲ. 성도다움을 끝까지 유지하는 성도의 삶이 아름답다. 1. 교회나 가정에서 한 번 깨진 권위와 질서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원래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대로 질서와 권위를 회복하는 일이 어려운 것이다. 성도가 자신의 삶에서 성도다움을 끝까지 지켜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 성도의 삶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뿐 아니라 성도 자신도 행복한 믿음생활을 하게 된다. 2.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권위와 질서를 잘 지킴으로 믿음의 삶과 개인의 삶에서 성공한 사람과 하나님의 권위와 질서를 무시하다가 실패한 인생을 산 대표적인 인물 두 사람이 나온다. 다윗과 사울 왕이다. 사울 왕은 자기 생각이나 판단이 하나님의 명령보다 언제나 우위에 있었다.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옳게 생각되는 대로 움직였다. 3. 반면에 다윗은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 전에 기도하거나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늘 하나님의 마음 을 헤아렸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울 왕과 다윗, 두 사람의 삶의 결과는 너무 나 큰 차이를 보여준다. 사울 왕은 실패한 신앙과 불순종한 인생의 대표자로,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라는 호칭 과 이스라엘 민족의 가장 뛰어난 왕으로 추앙받는다. 4. 성도의 삶에서 하나님의 권위와 질서를 지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가장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인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성경의 가치관을 자기 인생의 가치관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서 옳 다고 말하면 옳은 것이다. 성경이 죄라하면 그것은 죄로 여겨야한다. 5. 교회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범사에 하나님의 세우신 권위를 인정하고 따라야한다. 부모님께 순종하 라. 선생님을 존경하라. 직장 상사의 권위를 인정하라. 그런 태도가 아름다운 성도의 모습이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음으로 해서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6. 오직 잃은 것만 있을 뿐이다.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을 잃었고 생명줄인 하나님과의 관계도 깨졌다. 정말 어리석 은 선택이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보여준 하나님의 권위와 질서를 깨뜨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똑같이 되풀 이 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한다. 7. 나는 우리 향기나무교회 성도님들이 성도다움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기를 축복한다. 그런 삶의 모습이 가장 아름 다운 성도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