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을 드리는 올바른 자세
작성자 : pts | 작성날짜 : 2023-07-24 | 수정자 : pts | 수정날짜 : 2023-07-24

본문: 창세기4:1-15 제목: 헌금을 드리는 올바른 자세 19. 11. 24 향기나무성서침례교회 주일예배 서 병 안 목사 중심 사상: 구원받은 성도가 드리는 예물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1. 오늘 설교는 듣는 성도님들이 조금 부담스럽게 생각될 수도 있는 내용이다. 헌금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들으면 전혀 불편하지 않지만 믿음이 없거나 저의 의도를 오해하게 되면 상당히 불편한 마음이 생길 수 있다. 저는 헌금에 관한 설교를 일 년이나 이년에 한 번 정도 하고 있으니 헌금에 대한 설교는 거의 안한다고 말할 수 있다. 2. 목사는 자기가 섬기는 교회 성도님들에게 바른 신앙과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야할 의무가 있다.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올바른 헌금을 드릴 수 있도록 가르치고 알려주어야만 하는 것이 목사의 사역하는 한 부분이요 의무라고 믿는다. 3. 대부분의 교회에서 성경적인 헌금에 대하여 명확하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아마 교회에 오랫동안 다니신 분들도 정확하게 헌금을 왜 드려야하는 것인지? 헌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잘 모른다. 그리고 십일조나 감사헌금의 성경적인 근거가 무엇인지 거의 듣지 못했을 것이다. 4. 그냥 두루뭉술하게 믿음으로 드리면 복 받는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복이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신다. 헌금은 심는대로 거두게 된다. 적게 심는 사람은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사람은 많이 거둔다. 그러니 믿음으로 많이 드려야 한다. 아마 거의 이런 설교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5. 본래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의 의미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다. 더 많은 복을 받기 위해 헌금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복에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이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드리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이 올바른 헌금이다. 6. 오늘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듭난 성도로서 어떻게 헌금을 드리는 것이 올바른 자세인지 같이 생각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설교 제목도 ‘헌금을 드리는 올바른 자세’로 정했다. 먼저 우리가 드리는 헌금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도록 한다.. Ⅰ. 성도가 드리는 예물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A. 우리가 매 주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는 ‘하나님은 나의 주인입니다’라는 고백이 담겨있다. 1. 예배는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과 신앙고백, 그리고 정성이 담긴 예물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예배는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림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행위다. 2. 예배는 나의 몸과 나의 시간과 나의 재물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림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과 영광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시간이다. 매주 주일 그 귀한 시간에 하나님께 나의 몸을 드리고 나의 귀중한 시간뿐 아니라 내가 생명같이 여기는 재물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나의 전부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믿음의 고백인 것이다. 3. 예배는 하나님이 나의 인생에 주인이십니다. 나의 인생 모두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내가 가장 가치있는 존재가 되는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있을 때입니다. 이런 고백이 예배와 드리는 예물을 통해 증명된다.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 앞에 자신의 가장 귀한 것들을 하나님 앞에 예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그 행위를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 4. 역대상 29장을 함께 본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왕이 된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전을 지을 계획을 세운다. 다윗과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을 위해 힘을 다하고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가 가진 것들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다. 5. 다윗과 백성들은 자기 것들을 하나님께 드리면서도 기뻐했고 즐거워했다. 역대상29:9절 “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기뻐하였으니 곧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며 다윗 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니라” B.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물을 드릴 때 우리의 마음 상태를 보신다. 1. 창세기 4장 가인과 아벨의 드린 제사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제물의 원리는 이렇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드리는 헌금의 많고 적음보다 헌금을 드리는 성도가 어떤 마음으로 드리는지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이다. 2. 가인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없었고 드릴 때 감사함도 없었다. 부모인 아담과 하와로부터 하나님께 감사 제물을 드리라는 가르침에 의해서 제물은 드렸지만 마음이 없는 억지로 드린 인색한 제물이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다. (고린도후서9:7)“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3. 하나님께서는 교회 시대인 지금도 성도가 드리는 헌금의 크기보다 헌금을 드리는 성도의 믿음과 마음을 먼저 보심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란다. 나는 우리 향기나무교회 성도님들이 믿음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헌금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복한다. Ⅱ. 믿음으로 드리는 예물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A. 믿음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다는 것은 예배자가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말한다. 1. 3-5절을 다시 한 번 읽는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제물로 드렸다. 그리고 그 다음 표현을 주목해서 보아야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그러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2.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으실 때에 드려지는 제물보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을 먼저 보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어떤 제물을 가져왔는가보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말이다. 3. 일반적으로 아벨의 제물은 받고 가인의 제물을 거절한 이유로 아벨은 어린 양을 잡아서 피의 제사를 드렸고 가인은 피의 제사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본문 창4:3절을 볼 때 아벨은 양치는 자요 가인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니 자기의 얻은 수확물로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을 드린 것은 자연스런 모습이다. 4. 그러므로 아벨의 제사는 ‘피의 제사’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셨고 가인의 제사는 ‘피의 제사’가 아니기 때문에 받지 않으셨다는 것은 창세기3:21절을 유추한 해석이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것에 대하여 신약성경 히브리서11:4절에서 설명하고 있다. (히브리서11:4)“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5. 아벨이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는 말은 아벨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어서 그가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골라서 정결한 제물을 드린 것을 받으시고 의로운 자라고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6. 그러나 반대로 가인의 경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없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요한1서3:12)“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하나님께서 가인이 악한 자에게 속하였고 그의 행위를 악하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이유가 그가 악한 자에게 속하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잠언21:27)“악인의 제물은 본래 가증하거든 하물며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랴” B. 가인과 아벨의 시대뿐 아니라 지금도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먼저 자 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1. 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가인과 그의 제물은 열납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원어적으로는 보지도 않으셨다. 라는 의미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왜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쳐다보지도 않으셨을까?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고 가인이 드린 제사는 불신앙의 제사였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구원받은 성도들의 예배만 받으신다. 구원받지 않은 불신자들의 예배는 쳐다보지도 않으신다. 고린도후서 8장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님들에게 헌금에 대하여 가르칠 때, 마게도냐 교회 성도님들은 헌금을 드리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자신을 드렸다고 말한다. 3.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이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은혜를 베푸심으로 구원받은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요 자기들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드리는 예물을 기뻐하신다. 4.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려면 먼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임을 인정하는 믿음이 있어야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의 예물은 기쁨으로 받으시지만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불신자가 바치는 예물은 받지 않으신다. C. 성도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헌금을 드린다는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1. 우리는 여러 가지 항목으로 하나님께 헌금을 드린다. 감사헌금, 십일조, 선교헌금, 구제헌금, 건축헌금, 지목헌금 등이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교회를 유지하는 일과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사용된다. 2. 교회 사역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온 성도들이 믿음으로 그리고 정기적으로 교회에 헌금을 드려야 한다. 사실 성도님들이 교회에 정기적으로 헌금을 드린다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액수가 많든지 적든지 생명과 같은 재물을 드리는 것은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할 때 드릴 수 있다. 3. 그리고 드릴 때도 우리가 드리는 헌금이 하나님의 사역에 귀하게 사용될 것으로 믿고 드린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헌금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로 맺을 것을 기대하고 믿음으로 드리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에는 한 아이가 예수님께 드린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가득 차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4.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이 적어서 많이 드리지 못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헌금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을 이루어 가신다. 성도가 정성껏 최선을 다해 준비해서 드린 헌금은 하나님 앞에 존귀한 예물이 된다.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래시인들이 드린 많은 돈보다 과부가 정성껏 드린 두 렙돈을 칭찬하셨다(눅21장). 5. 우리가 정성껏 드린 헌금은 지옥형벌이 예정된 불쌍한 영혼들을 죄와 멸망에서 건져내는 일에 사용된다. 국내 개척교회와 해외에 파송되어 있는 선교사들에게 보내져서 그곳의 영혼들을 살리는 일에 귀하게 사용된다. 여러분들이 드린 헌금이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살리는 일에 사용되는 것이다. Ⅲ. 감사함으로 드리는 예물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A.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의 기본적인 정신은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이다.(신명기14:22-29) 1. 가인은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기는 했지만 감사하는 마음을 드리지 않았다. 억지로 드리지 않을 수가 없어서 속으로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해서 드린 것이다. 가인의 행동에서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원래 사람의 속마음은 겉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감추어두었던 것이 어떤 계기가 있으면 폭발한다. 2. 5절부터 본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의 제물은 거절하신다. 그러자 가인은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3. 만약에 여러 분 같으면 어떻게 반응하겠나? 어? 내가 드린 제물이 잘못되었나? 내가 뭔가 실수 했나?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근데 하나님께서 거절하자마자 가인이 분노하며 안색이 변한 것은 그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이미 좋은 마음이 아니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4. 여기서 열납하다는 뜻으로 쓰인 히브리어 ‘샤아’는 원래 뜻은 응시하다. 보다라는 의미가 잇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악하고 억지로 드린 가인이 드린 제물을 볼 때 그의 제물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아예 쳐다보지도 않으시고 외면했다는 의미다. 5. 아벨의 제물은 정성스럽게 드린 제물이었다. 아벨은 자기가 키우는 양이 낳은 첫 새끼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고른 후 정성스럽게 다듬어서 거룩한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정결한 것을 드린 것이다.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드렸다는 것은 제물을 잘 다듬어서 뼈와 내장은 버리고 살과 기름으로 드렸다는 의미가 된다. 6. 반면에 가인의 제물에는 그런 표현이나 수식어가 없다. 원래 곡식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물이다. 레위기에 보면 하나님은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素祭)도 기쁘게 받으신다. (레위기2:1-2)“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가루 한 움큼과 기름과 그 모든 유향을 가져다가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7. 결국 가인의 제물은 무나 배추나 포도나 무화과같은 채소와 과일을 드렸을지라도 다듬지도 않은 채 지저분한 상태로 드리지 않았나 생각된다. 가인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정결함이 없는 제물을 드린 것이 되고 말았다. B. 그러나 교회시대의 헌금은 복을 받기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복이 감사해서 드리는 것이다. 1. 우리는 원래 사형에 처할 악한 죄인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를 제물로 주셨으니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다. 헌금은 내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성도로서 생명의 은인이요,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이다. 2. 현재 여러분의 헌금생활은 어떤가? 성경에서 심는 대로 거둔다고 했으니 내가 내는 액수의 열 배의 축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드리고 있나? 아니면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고 있나? 내가 갖고 있는 것 중 최고로 좋은 것을 드리고 있나? 3. 성도에게 있어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자신을 드리는 것과 같다. 내가 가진 재물을 하나님 앞에 인색하지 않게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재물보다 하나님을 귀하게 여긴다는 증거가 된다. 우리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보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4. 아직 믿음이 연약해서 온전한 헌금 생활을 못하고 있다면 하나님께 기도하면 된다.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만큼 감사함으로 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믿음이 성장해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드릴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바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많던 적던 자기가 드릴 수 있는 믿음만큼 드리면 된다. 내가 얼마를 드리겠다고 작정했는데 손이 떨리거나 마음이 큰 부담이 생기면 손이 떨리지 않을 만큼 드리면 된다. 그렇게 시작해서 믿음이 자라는대로 점점 많은 것을 드리면 된다. (로마서12:3)“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5.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가 최선을 다해 준비하여 감사로 드리는 제물을 기뻐하신다. (시편50:8-9, 23)“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