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작성자 : pts | 작성날짜 : 2023-03-31 | 수정자 : pts | 수정날짜 : 2023-03-31

본문: 요한복음11:1-45 제목: 부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23. 2. 12 향기나무성서침례교회 주일예배 서 병 안 목사 중심 사상: 예수님께서 부활과 생명으로 오신 이유는 모든 사람에게 산 소망을 주시기 위함이다. 1.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셔서 자신이 감당할 역할에 대하여 일곱 가지 비유로 말씀하셨다. 오늘은 그 다섯 번째 시간으로 부활과 생명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다. 2.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중에 요한복음11:25-26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본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3.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이 선언은 어떤 의미를 담고 하신 말씀일까? 이어지는 말씀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4.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단어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아무리 뛰어난 미모를 가졌어도,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아무리 좋은 배경이 있어도 죽으면 자랑스럽게 여기던 모든 것들이 무가치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5.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죽음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성경에 죽은 사자보다 산 개가 더 낫다는 말이 있는데 맹수의 왕인 무서운 사자도 죽으면 살아있는 개만도 못한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6. 그런 면에서 볼 때 오늘 예수님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이 말씀은 나는 죽음을 이긴 존재요, 죽음을 다스리는 존재요, 죽음을 초월한 존재다. 누구든지 나를 주로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살 것이며,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는 위대한 선언이다. 7. 오늘은 예수님의 이 위대한 선언이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복을 나누고자 한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부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의 부활과 생명은.. ) Ⅰ. 연약함과 슬픔뿐인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기 위함이다. A. 모든 사람은 육신의 한계와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평생 수고와 슬픔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1. 모든 사람의 인생은 수고와 슬픔뿐이다. 제가 모든 인생에 평생 수고와 슬픔이 반복된다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우리 육신이 가진 한계와 연약함 때문이다. 세월이 갈수록 우리 몸이 늙어가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2. 사람들이 젊을 때는 젊음 자체가 힘이요 능력이요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30대를 지나 40, 50대에 접어들게 되면 힘은 점점 약해지고 외모도 점점 평범하게 변해간다. 젊었을 때 미스코리아에 버금갈 정도로 빼어난 외모를 가졌던 미인이라도 나이 70살이 넘으면 평범한 외모가 된다. 3. 젊었을 때 아무리 힘이 센 사람도 오십, 육십이 넘어가면 힘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쉽게 느낄 것이다. 70, 80살이 지나면 대부분 몸에 아픈 곳 한두 가지 이상씩은 다 갖고 있다. 육신의 연약함으로 생기는 수많은 질병과 죽음으로 인해 인생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이번 명절에 아버님을 모신 납골당에 갔다 왔는데 나이드신 분들도 있지만 생각보다 젊은 사람들도 그곳에 적지 않게 와 있는 것을 보면서 인생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우리도 이런 부분에서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5. 오늘 요한복음 11장에는 사랑하는 오라비의 죽음으로 큰 슬픔을 당한 두 자매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오라비 나사로가 큰 병에 걸려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된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나사로를 고쳐 달라고 요청한다. 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말을 듣고도 즉시 가지 않으시고 이틀이 지난 후에 나사로에게 가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있는 베다니에 도착했을 때, 이미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지난 후였다. 7. 집안의 큰 기둥 역할을 하던 오라비 나사로의 죽음은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큰 슬픔이었다. 그동안 서로 의지하고 살던 오라비가 죽었으니 그 슬픔은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배우자나 형제를 죽음으로 잃는 슬픔은 정말 감당하기 힘든 일이지만 누구든지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인생이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말한다. 8. 사람들은 슬픔을 당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위로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슬픔은 사람들의 위로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리 믿음이 있지만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 앞에서 느끼는 슬픔은 감당하기 힘든 법이다. 그러면 우리가 그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그 문제의 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활과 영생에 있다. B. 예수님은 죽은 사람도 다시 살릴 수 있으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1. 마르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이렇게 말한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그러나 마르다는 다시 말하기를 “마지막 날 부활 때 우리 오라비가 다시 살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은 “내가 살려 줄게 걱정하지마!”라고 하셨지만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있을 부활로 생각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신다.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3. 동생 마리아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서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말하기를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라며 예수님이 늦게 와서 나사로가 죽었다는 듯이 원망 섞인 말을 한다. 4. 마리아는 크게 낙심해서 울었고 또 함께 있던 유대인들까지 울면서 자기 말을 믿지 않자 예수님은 믿음이 없음에 화도 나셨고 안타까운 마음도 드셨다. 예수님은 그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신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 도착하니 무덤 입구는 돌로 막혀있었다. 5. 예수님께서 “돌을 옮겨놓으라”고 명하신다. 그러자 마르다가 “죽은 지 나흘이 지나서 썩는 냄새가 납니다”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길 “내 말에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사람들이 돌을 옮겨 무덤 입구가 열리자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기도하신다. 6. 41-43절을 본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7. 나사로를 부르시니 그때 죽은 나사로가 온몸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얼굴에는 수건이 싸인 채였다. 예수님께서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고 말씀하셨고 나사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C. 인생 중에 만나는 모든 슬픔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들은 구세주 예수님을 만나면 완벽하게 해결된다. 1. 오빠의 죽음 앞에서 슬픔에 잠겨있던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 있는 예수님이었다. 문상을 온 사람들은 나흘 동안 마르다 자매를 위로했지만 그들의 위로는 슬픔을 없애주지 못했다. 그냥 같이 슬퍼하고 울어주는 것뿐이다. 2. 그러나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무덤에 있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을 때 마르다와 마리아의 슬픔은 기쁨과 감사와 영광으로 바 뀌게 된다. 많은 사람이 와서 나흘 동안 위로를 해도 해결되지 않았던 큰 슬픔이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단번에 해결된 것이다. 3. 예수님께서 마르다 자매에게 선포하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말씀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슬픔과 연약함으로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에게 소망을 주는 능력의 말씀이다. 마르다와 마리아뿐 아니라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분들에게도 소망과 능력의 말씀이 되기를 축복한다. 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우리는 오늘 이 예수님의 말씀을 평생 잊지 않고 마음에 기억하며 살기를 축복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40절에서 분명히 “내 말을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부활이요 생명은.. ) Ⅱ. 죄와 저주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함이다. A.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들과 저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를 위한 말씀이기도 하다. 2. 성경 고린도전서15:3-4절에 하나님은 이렇게 기록해 놓으셨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세상의 모든 죄인을 위한 죽음이며 저와 여러분들처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한 말씀이라는 것이다. 3. 사람들은 본래 죄인이었고 자기 죄로 인해 영원한 지옥 형벌이 예정되어 있다. 로마서 3장에는 세상 사람들의 악함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4.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 온 세상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예수 십자가 보혈로 인해 값없이 의를 얻어서 심판을 면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을 통해 여러분들의 죄 값과 그리고 나의 죄 값이 완벽하게 선 지불되었다. 5.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선 지불하셨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죄의 대가는 영원한 지옥 형벌이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육신의 고통은 죽으면 끝이 난다. 그러나 지옥 형벌의 고통은 영원히 멈추지 않는다. 6. 성경은 지옥을 가리켜 풀무불(마13:42), 유황불(계19:20), 영원한 불(마25:41)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지옥 형벌을 받는 자들은 그 속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를 갈아서라도 그 고통이 해소된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7. 지옥 형벌이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예수님께서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 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마태복음18:9)고 말씀을 하셨을까? 8. 집에서 요리할 때 가끔 달궈진 프라이팬이나 뜨거운 뚝배기 같은 곳에 팔뚝이 잠깐 닿을 때가 있다. 얼마나 뜨거운지 모른다! 순간적으로 닿기만 해도 그렇게 고통스러운데 하루 이틀도 아닌 영원한 시간을 그 뜨거운 불꽃 속에서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해보라! 그것이 바로 죄의 결과인 무서운 지옥 형벌인 저주다. 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는 큰 죄든지 작은 죄든지 이렇게 무서운 저주를 가져온다. 그러나 부활과 생명으로 오신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는 사람은 모든 죄를 용서받고 죄의 저주인 지옥 형벌까지 면제받게 되니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이요 소망이다. B.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는 말씀에서 생명은 영원한 생명을 가리키는 말이다. 1. 내가 예수님의 부활과 생명에 소망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말의 의미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부터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된다. 예수님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으니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그 순간부터 영원한 천국 삶이 시작된다는 말이다. 2.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몸은 질병이든지, 사고든지, 나이가 들게 되든지 반드시 육체적인 죽음을 죽게 된다. 죽은 성도들의 몸은 땅에 묻혔다가 장차 예수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영원히 살 수 있는 새 몸으로 부활하게 된다. 3.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육체는 나이가 들게 되면 병도 들고 늙고 고장이 나기도 한다,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 영원히 살 수가 없다. 아무리 오래 살아야 150년 이상 살 수 없다. 그래서 영원히 늙지 않고 병들지 않는 새 몸을 갖기 위해 부활이라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4. 그런 의미로 볼 때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선포하신 말씀은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죽음의 권세를 단번에 깨뜨리는 위대한 선언이다. 5. 누가 감히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했겠나? 상상으로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생명의 능력은 능히 그 일을 이루셨다. 6.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 영광을 보게 될 것이요, 경험하게 될 것이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누구나 이 위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오늘 요한복음 11장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다. 7. 육체의 부활은 아직 우리에게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모든 성도에게 보장된 복된 소망이다. 세상의 시작이요 과정이요 끝이 되시는 예수님이 그 일을 보장하신다. (요한계시록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예수님의 부활과 생명은.. ) Ⅲ. 믿는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A.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나게 하신다. 1. 오늘 본문 3-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평소 아끼는 나사로가 병 들어서 죽을 상태에 있음을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2. 성경에 의하면 사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와 그의 두 여동생 마르다와 마리아를 많이 사랑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평소에 아끼고 사랑하며 교제하던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달려갔어야 하는데 예수님은 오히려 그 소식을 듣고도 그곳에 이틀이나 더 머물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3. 예수님은 오히려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하신 말씀이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오히려 나사로가 죽기를 기다리는 듯한 뉘앙스로 말씀하시기도 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신 것이다. 4. 요한복음 9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미 날 때부터 소경 된 자를 보고 이 사람이 소경 된 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날 때부터 소경 된 자의 눈을 뜨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신다. 5. 아이러니한 것은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러 온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그곳에 오신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37절 “그중 어떤 이는 말하되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6. 당연히 예수님께서는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 썩어서 냄새나는 나사로의 무덤 앞으로 가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신 후 무덤 속에 누워있는 나사로를 향해 크게 외치신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러자 죽은 나사로가 살아서 걸어 나왔고, 병에 걸려서 죽어있던 나사로는 다시 살아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되었다. 7.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요12:11절에 보면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크게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B.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통해서도 나사로처럼 영광 받으시길 원하신다. 1. 어떻게? 아직 우리가 어떤 경로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사용될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우리가 믿음 안에서 잘 견디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으로 믿는다. 2.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때로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내가 원치 않는 방법이나 길로 인도하실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두려워하지도 말고 피하려 하지도 말라. 3.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저와 여러분 안에는 죽은 자도 살리시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생의 능력을 가지신 예수님이 살아 계신다. 4. 우리가 아무리 위험해 보이거나 상황적으로 어렵게 보이더라도 부활이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안전은 보장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인 우리를 통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다. C. 결론 1. 예수님께서 부활과 생명이 되심은.. 연약함과 슬픔뿐인 인생들에게 소망을 주기 위함이다. 2. 예수님께서 부활과 생명이 되심은.. 죄와 저주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함이다. 3. 예수님께서 부활과 생명이 되심은.. 믿는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