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 문, 예수 그리스도
작성자 : pts | 작성날짜 : 2023-08-01 | 수정자 : pts | 수정날짜 : 2023-08-01

본문: 요한복음10:1-10 제목: 양의 문, 예수 그리스도 23. 7. 23 향기나무성서침례교회 주일예배 서 병 안 목사 중심 사상: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들을 세상의 악과 위험에서 보호하는 문이다. 1.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은 여러분과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모두 쏟고 죽으셨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자기 죄로 인한 죽음이 아니라 이 세상 죄인들을 대신해서 죽으신 대속의 죽음이다. 2. 그리고 무덤에 장사된 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도 죽은 상태로 우리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이 있음을 몸소 증명하셨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모든 믿는 자의 소망이 되었다. 나도 비록 이 땅에서 살다가 몸은 죽지만 장차 예수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새 몸으로 부활할 것을 소망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3. 예수님을 믿으려면 예수님이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떤 역할로 세상에 오셨는지를 자세히 알아야 한다. 알아야 더 확실하게 믿을 수 있고 확신 가운데 변하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주여 믿습니다!” 하는 믿음은 매우 위험하다. 예수님 믿으면 좋다고 하니까 그냥 믿는 것, 이런 믿음을 맹종이라고 한다. 4. 내가 지난주 설교에서 우리는 질그릇 같은 연약하고 잘난 것 없는 존재이지만 우리가 보배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니 우리는 보배를 담은 귀한 그릇이 되었다고 말씀드렸다. 정말 그렇게 믿으시죠! 아멘!! 5. 오늘은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이 왜 보배인지를 말씀드리려고 한다. 예수님이 왜 보배인지 알아야 자부심을 가질 것 아닌가?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에 관한 일곱 가지 비유가 나온다. 여섯 가지 의미로 예수님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6.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8:12), 나는 양의 문이다(요10:7), 나는 선한 목자다(10:11,1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나는 참 포도나무다(15:1,5) 7. 이 여섯 가지 비유 중에 오늘은 ‘나는 양의 문이다’(요10:7)라는 비유를 설명해드리려고 한다. 요한복음 10장7절을 소리를 맞춰서 한 번 더 읽어본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양의 문이라는 말은 언뜻 들으면 무슨 말이지? 라는 생각이 든다. 새 번역 성경은 이 부분을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이렇게 번역했다. 정리하면 ‘예수님은 양이 양우리로 드나들 수 있는 문이다’라는 의미가 된다. 9. 오늘은 요한복음 10장을 통해 양의 문,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왜 우리가 들어가야 하며? 또 그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에게 어떤 일들이 생기는지 알아보면서 복을 나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양의 문, 예수 그리스도’로 정했다. Ⅰ. 양의 문,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이다. A. 예수님은 사람들이 거룩한 하나님 나라,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단 하나의 문이시다. 1.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에게 보냄을 받은 메시아라는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알려주시기 위해 양과 목자의 비유를 사용하신다. 비유란 사물이나 자연을 이용하여 관념이나 말하고자 하는 어떤 것을 쉽게 이해시키는 방법이다. 2.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양과 목자의 비유도 유대인들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친숙한 비유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목축 생활을 해왔다.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 등 모두 목동 출신이다. 그리고 선지자들도 목자와 양의 비유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계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사야40:10?11) “보라 주 여호와께서..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3. 양을 치는 목자는 하루 종일 푸른 초장에서 풀을 뜯고 쉬며 놀던 양들을 저녁이 되면 우리로 양들을 모아들인다. 이리나 늑대와 같은 맹수들의 공격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함이다. 당시 이스라엘 지방에서는 개인적으로 우리를 가진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하나의 우리를 공유해서 사용했다. 4. 한밤중에 맹수들로부터 또는 도둑으로부터 양을 안전하게 지키려면 우리의 문을 하나로 만들어야 했고 문지기는 그 문을 잘 지켜야 했다. 아침이 되면 목자가 우리로 와서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면 문지기는 목자를 확인하고 문을 열어준다. 5. 만약 양의 목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오면 문지기는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오직 양의 목자만이 우리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혹시라도 문이 아닌 울타리로 들어가려는 자는 도둑이요 강도가 분명하다. 1절과 2절을 본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6.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임을 비유로 말씀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더 명확하게 다시 말씀하신다. 7-9절을 같이 읽는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7. 예수님께서 양의 문이 되신다는 말은 양우리에 들어가고 나오는 양들의 자격을 예수님이 정하신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 안에는 양이 아닌 맹수는 절대로 들어갈 수가 없다. 오직 양만 들어갈 수 있다. 양 비슷한 것도 들어갈 수 없고 늑대나 이리 같은 것들도 못 들어간다. 혹시라도 양들 틈에 숨어서 몰래 들어가려고 해도 예수님의 예리한 눈에 발견된다. B. 요한복음 10장의 비유에서 양우리는 천국을 가리키고 양은 성도를 가리킨다. 1. 예수님이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이시다. 천국에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 예수님이 정하신 기준에 합당한 사람들만 들여보내실 것이다. 2. 적당하게 믿거나 자기 방식대로 믿은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예수님의 기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천국은 적당하게 눈치 봐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3. 나는 열심히 교회에 출석했으니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아니다. 나는 우리 부모님이 열심히 나를 위해 기도하셨으니 천국에 들어간다? 아니다. 나는 교회에서 직분도 받고 열심히 섬기고 헌금도 많이 했으니 천국에 간다. 아니다. 4.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는 종교 생활로는 절대 이룰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인정받는다. 5.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기준은 너무나 명확하다. 천국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 곳이니 흠도 티도 없는 완벽하게 거룩한 의를 인정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 이는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로 영접할 때 이루게 된다. 이 방법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오직 예수님만 구원의 문이 되신다. C. 세상 죄인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문이 되신다. 1. 창세기 7장에 나오는 노아 시대 홍수에서 노아의 가족들을 구원해준 방주의 문도 단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성막이나 성전 안에 있는 거룩한 지성소에 들어가는 문도 오직 하나뿐이다. 모두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모형들이다. 2. 성전 안에 있는 거룩한 지성소에는 일 년에 한 번, 오직 대제사장만이 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다. 지성소 안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거룩한 장소다. 죄인은 절대 들어갈 수 없었던 지성소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로 인해 열린 것이다. 히브리서 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3.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안심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이시다.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도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영원한 죄 용서를 받게 되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4. 지금 시대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대는 절대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네 방식도 진리가 되고 내 방식도 진리가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천국에 가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다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요한복음14:6)“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5.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이다. 누구도 예수님을 통과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요즘 종교 다원주의라는 이름으로 구원의 길이 여러 종교에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6. 성경은 그 사람들을 향해 도둑이요 강도라고 말한다. 8절에서 예수님께서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도둑이요 강도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신다. 9절,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양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모든 죄인들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의 문이 되신다. 여러분과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었음을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Ⅱ. 양의 문,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성도의 안전이 보장된다. A. 예수님이 보호하시는 성도는 어디에 있든지 항상 안전을 보장받는다. 1. 우리가 양의 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갔다는 의미는 세상 모든 악과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는 것을 의미한다. 각종 사고와 악한 사람들이 횡횡하는 위험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안전한 곳은 어디일까? 2. 지난 금요일 오후 2시경에 신림역 근처에서 불행한 자신을 한탄하던 30대 남자가 행인들을 무차별 칼로 찌르는 큰 사고가 있었다. 현장에서 한 사람이 사망하고 세 사람이 크게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사실은 나도 그 비슷한 시간에 신림역을 이용했다. 마음이 울적해서 맛있는 커피를 한 잔 마실까? 생각하다가 점심을 미처 먹지 못해서 그냥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탔다. 만약 커피를 마시러 갔다면 골목길에서 재수없이 그 살인범을 만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 끔찍한 일이다. 어쨌든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인해 내 발걸음은 카페가 아닌 집으로 그냥 돌렸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3. 지금 세상은 지극히 위험하다. 여기저기서 각종 사고가 터지고 길을 가다가 땅이 꺼지기도 하고 하늘에서 날아온 쇳덩이에 다치기도 한다. 갑자기 인도로 자동차가 달려들기도 한다. 어느 곳 한 군데, 여기는 절대 안전하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4. 이렇게 위험이 가득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안전하게 살 수 있을까? 양들에게 있어서 가장 안전한 곳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 안에서는 아무리 강한 맹수라 할지라도 양의 생명을 해하지 못한다. 양 곁에 목자가 지켜줄 때 어떤 위험도 양을 위협할 수가 없다. 도둑이나 강도가 우리 안에 절대로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5.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 도 안에 있다고 하는 것은 마치 양이 우리 안에서 안전하게 목자의 보호를 받는 것처럼 세상의 악과 사단의 공격에서 안전하게 보호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예수 그리스도 안이다. 6. 여러분들도 잘 아는 시 23편을 보면 양이 목자와 함께 있을 때 얼마나 안전하고 얼마나 풍성한지 잘 나타나 있다. 시 23편을 잠시 같이 살펴본다. 전체 내용이 길지 않으니까 한 목소리로 소리를 맞춰서 읽도록 한다.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7. 다윗 같은 경우 그가 평생 겪은 위기와 위험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있다. 사울 왕의 위협과 전쟁과 측근들의 배신으로 인해 여러 번 죽음에 노출된 적이 있다. 오죽하면 다윗이 자기가 사망의 골짜기를 걸었었다고 고백했겠는가? 그러나 다윗의 목자이신 하나님이 지팡이와 막대기로 다윗을 안전하게 지켜주셨다. 8.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의미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과 같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으니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위험하겠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다윗의 고백을 기억하라. B.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다는 의미는 죄의 저주가 우리를 침범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1. 사람들은 자기가 지은 죄로 인해 두려워하고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저주 때문에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모든 저주가 끊어져 더 이상 저주가 우리 삶을 괴롭히거나 위협하지 못하게 되었다. (갈라디아서3:1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2.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이러한 세상의 모든 저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비록 나쁜 사주를 타고 났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조상의 죄와 저주로부터도 자유롭게 된다. 나쁘게 나온 점괘로 인해 무서워할 필요도 없다. 3. 뿐만 아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더 이상 조상들의 죄나 가계의 저주로 인해 해를 받지 않는다. 조상님 묫자리가 나빠서, 저주받고 죽은 조상이 있어서 등등. 여러분들은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예의 문을 통과해서 예수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4.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안전이 보장되어있으며 우리의 모든 안전과 장래의 모든 환난에서도 이미 안전이 보장되어있음을 알고 있어야 더 이상 불필요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시편 121:3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사야 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그리고 또 한 가지... Ⅲ. 양의 문,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풍성한 삶이 보장된다. A.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는 풍성한 삶을 약속하셨다. 1. 조금 전에 우리가 시23편을 통해 알게 된 사실 하나가 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 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인생들에게는 어떤 부족함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것이 성도에게 보장된 복 중의 복이다. 2.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요한복음 10장에도 이와 같은 약속이 있다. 9-10절을 읽는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3. 예수님께서는 양의 문이신 자신 안으로 들어온 양에게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양의 우리 안에 있으면서 굶는 양은 없다. 양에게 있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은 안전과 더불어서 양식의 풍족함이 보장되었음을 말한다. 4. 도적이 양의 우리에 들어가는 것은 도적질하기 위함이요 맹수가 우리 안으로 침범하는 것은 죽이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목자가 양의 우리로 들어가는 이유는 양을 돌보기 위해서다. 꼴이 부족하면 부족한 것을 채울 것이요, 양들의 양식이 부족함을 보았다면 그 필요를 채워주기 위함이다. 5.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성도에게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늘 함께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부족함 없이 채워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B.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영원한 생명뿐 아니라 더 풍성함 삶을 보장하고 있다. 1. 나는 오늘 본문 10절 마지막에 나오는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씀에서 ‘더 풍성히 얻게 한다’는 의미를 오늘 여러분들이 꼭 기억하고 돌아가면 좋겠다. 2. 여기서 ‘더 풍성히’라는 의미의 단어로 페리쏜(perisson)이라는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단어는 ‘풍성한’ 또는 ‘보통의 수나 규칙을 벗어나거나 초과한’ 또는 ‘필요이상의, 충분하고도 남은 여분의’와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기대보다 넘치도록 더 주신다는 의미다. 3.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 온 성도에는 영생뿐 아니라 실제 생활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도록 풍성하게 채워주신다는 의미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것에 흘러넘칠 정도로 넉넉한 복이 약속되어있다는 말이다. 4. 사랑하는 성도님들께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뿐 아니라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풍성한 복을 누리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복이나 은혜는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 모든 것이 넉넉하여 항상 넘쳐서 흐를 정도로 풍성한 복입니다. 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이후 40년 동안 자기 백성들을 한 번도 굶기신 일이 없으며 먹을 것이 부족해서 곤란을 당한 일이 단 한 번도 없다. 바로 얼마 전의 일을 생각해본다. 요한복음 6장을 본다. 6. 예수님께서 자기를 찾아 온 많은 무리가 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먹을 것이 없어 굶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다. 그때 마침 어리아이가 가지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아 축사하신 후 남자만 오천, 전체 최소 만 명 이상 되는 무리(마14:19-21)를 배불리 먹이시고 남은 조각을 바구니에 담았더니 무려 열 두 바구니에 가득했다. 7.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풍성하시다.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주여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넘치도록 채워주신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양의 문이 되신다는 것은 우리가 모든 필요들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부족함 없이 공급받는 다는 말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들어가며 나오며 얻게 되는 것은 풍성한 영적 꼴이다. 8.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 대해서 아끼지 않고 베풀어 주신다. 자녀 된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주실 때에 아까워서 찔끔찔끔 주시는 쩨쩨하거나 인색한 하나님은 절대로 아니시다. 겨우 먹고 살만큼만 인색하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 없이, 풍족하게, 내 기대와 내 그릇에 흘러넘칠 만큼 넉넉하게 주신다. C. 결론 1. 양의 문,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이다. 2. 양의 문,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성도의 안전이 보장된다. 3. 양의 문,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풍성한 삶이 보장된다.